[뷰앤비전] 체감경기, 봄 아니다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체감온도라는 기상학 용어가 있다. '느낌온도'라고도 한다.

온도계상에 표시되는 기온뿐 아니라 풍속ㆍ습도ㆍ햇볕 등 기상요인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결정된다. 옷을 어떻게 입었는지, 집은 따뜻한지, 마음은 포근한지 등에 의해서도 바뀔 수 있다. 체감온도를 결정할 수 있는 공식도 개발돼 있다. 기온ㆍ풍속ㆍ지표면이 받는 햇빛양 등을 칼로리의 값으로 표기한다. 체감경기라는 말이 있다. 공식화된 경제학 용어는 못된다. 하지만 언론도 시민도 즐겨 사용한다. '장바구니 물가', '실업률', '어음부도율', '소비자 기대지수', '중소기업 가동률' 등이 체감경기를 좌우하는 주요 요소일 것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자신의 저서 '진보주의자를 위한 양심(The Conscience for a Liberal)'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현재 미국 국민 대부분이 경제에 불만이 많은 이유가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면서 GDP처럼 국가전체의 성과를 나타내는 수치가 좋다고 해서 평범한 노동자들에게까지 그 이득이 돌아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지금처럼 전체적인 경제성장과 일반적인 미국 국민의 재산과의 연계가 단절된 것은 현대 미국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2001년 이후의 미국의 경제상황은 마치 MS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어떤 술집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빌게이츠가 들어감으로써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평균소득은 크게 오를 수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가 스스로 경제지표의 유효성을 사실상 부정하는 듯한 논리로까지 이어진다. "경기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더 이상 경제성과 측정치와는 상관이 없어진 듯하다"

경제학은 강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경제는 시민들의 실제 삶과는 무관한 숫자에 발이 묶여버렸다. 행정부가 늘 말하는 '펀더멘털'과 거시경제지표는 시민의 삶과는 무관하다. 노무현 행정부 시절 거시경제지표가 좋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되풀이 됐다. 대통령도 그랬고, 총리도 그랬다.

이명박 행정부도 이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심리정책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는 있다. 그럼에도 체감경기의 회복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크루그먼의 지적대로 경제에 대한 불만은 쌓여가고, 역시 그 불만은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체감경기를 대변해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지표는 경제학의 영역 밖이다.

우리 사회에서 GDP, 1인당 국민소득, 수출증가율 등이 증권시장에는 의미 있는 지표겠지만, 동네시장의 참가자에게는 관심 밖이다. 한마디로 내 지갑, 내 용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난달 27일 한국은행은 국민소득 추계작업의 기준연도를 2000년에서 2005년도로 변경했다. 그랬더니 전날까지만 해도 1863만원이던 2007년 1인당 국민소득이 2016만원으로 150만원 가량 늘어났다. 그렇다고 갑자기 불어난 150만원이 '당신의 소득'이었다며, 내 통장에 환급될 리는 없다. 지금처럼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설령 환급될 수 있다고 해도 대부분은 대자본가들과 빌 게이츠와 같은 부자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이런 지표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난해 정부는 이른바 'MB물가지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소비자물가 산출지수에 포함되는 489개 품목 중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가중치가 높은 52개 품목을 별도로 산출한 지표다. 특별히 관리했음에도 더 올라버렸다. 그만큼 민생이 어렵다는 증거이고, 체감경기는 악화됐다는 신호다. 수출은 내수로 연결되지 않는다. 트리클다운(trickle down) 효과도 증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체감계절은 봄이겠지만, 체감경기는 결코 봄이 아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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