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내내 아팠다. 봄이 되면 한번 신열이 왔다 간다.
그 신열은 봄을 맞는 꽃 몸살 같다. 방안에 누워 끙끙 앓다가 일요일 저녁 무렵에서야 밖으로 나왔다. 밭두렁 검불이며 낙엽들을 끌어 모아 불을 지를 때쯤 노을이 번졌다.
노을은 잣나무골 제일경(第一璟)이다. 울창한 잣나무숲도 노을에게 밀린다.(그래도 명색이 잣나무골인데...) 내 이웃들은 숲 이름은 잣나무에게, 제일경은 노을에게 부여했다. 합당한 배분이다. 이웃집 변호사가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을은 바로 잣나무골에서 볼 수 있다"고 가끔씩 허풍을 떨기는 하지만 전혀 거짓은 아니다. 그만큼 잣나무골의 노을은 일품이기는 하다.
서편 하늘이 물들고, 노을은 흑염소떼를 몰고 앞산을 덮쳐온다. 서북향의 잣나무골은 아직 햇살과 노을의 여운에 휩싸여 있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시간속에는 수많은 노을이 겹쳐져 있다. 내게 있어 희망이라는 단어는 무지개나 파랑새가 아니라 노을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내 생각이 틀렸나 ? 어떤 책에도 노을이 희망의 상징인 것을 본 적 없으니.
<노을1>
어릴 적 나는 어미를 따라 갯가에 가기를 좋아했다. 갯가에 이르러 앞서 가는 어미의 광목 치마는 유달리 희고 빛났다.희디흰 광목 치마는 검은 갯펄위에 아주 처연히 대비된다. 썰물을 따라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멀리 작은 배들이 수평선너머로 사라져가는 모습과 중첩되면 바다는 한 폭의 그림으로 변한다.
나는 바다의 골짜기속에서 조개 잡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밀물 즈음 통통배의 고동소리가 울린다. 배들은 붉은 노을을 뒤집어쓰고 검은 점으로 귀환하는 모습이란 !! 나의 어린 가슴도 혼비백산한다.
"어미야. 나는 언젠가 큰 배를 타고 이 세상 끝까지 가 볼테다"
어미는 그윽한 눈빛으로 어린 아들을 바로보며 손을 꼭 잡아줬다. 나는 은근히 내심 어미가 걱정됐다.
"집에 오랫동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라. 그 땐 기다리지 마"
내가 사는 곳 외의 또 다른 세상이 있고, 노을은 그 세상에 대한 동경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떠나갈 집과 어미와 어린 날들이 있다는 것을.
<노을2>
스물 셋. 구룡포 호미곶 등대 앞 동해 바다 백사장을 새벽마다 달렸다. 노을이 어둠을 밀고 바다를 물들인다. 핏물진 수평선 위로 태양이 솟는다. 나는 웃옷을 벗고 가슴으로 태양을 안는다. 태양이 가슴에 안길 때쯤 노을이 스러진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착실한 농부로 살아야겠다.어미가 기다리다 눈물 짓지나 않을까..."
바닷사람의 꿈을 접고 나서 나는 잠시 바다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군대엘 왔었다. 하지만 뛰고 달리며 보낸 삼년동안 내 꿈은 전혀 무뎌지지 않아 온통 상어 이빨에 찢긴 참치처럼 청춘이 아팠다. 먼 세상도 돌아보지 못하고 일찍 집에 갈 시간이 온 것이다. 나의 산책도 허무했다.
그 허무를 가끔씩 아침노을이 덮어줬다. 나의 귀가는 썰물을 따라 뱃길로 나갔다가 밀물에 돌아오는 통통배같았다.
"부우우...부와아.."
<노을3>
"태양은 서쪽에서 떠오른다"
이른 아침 올림픽대로를 따라 잠실에서 공항 방향으로 달리는 사람들은 안다. 우리가 여의도를 향해 길을 달릴 때 태양은 63빌딩에서 떠오른다는 것을
검은 빌딩이 붉게 물들고 나자 태양은 빌딩의 발목에서부터 서서히 건물의 중심으로 올라온다. 88도로 출근자들에게 63빌딩의 일출은 일상사지만 내겐 언제나 눈부시다.
서편에 태양이 솟고, 눈부신 길 위에 우리가 있다.
그렇다. 그야말로 태양은 서쪽에서 떠오른다. 어느 덧 나의 항해는 해 뜨는 서쪽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빌딩의 커튼월이 빚는 착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완전한 진리란 없다.
내가 어릴적 어미의 손을 잡고 맹세했던 꿈도 아주 먼 세상 끝은 해뜨는 서쪽인지도 아직 모르겠다.
벗들 !
오늘 바람이 차다.
혹시 벗들의 아파트에는 어떤 노을이 뜨고 지는가. 또 그대들을 둘러싼 풍경은 무엇인가.
도대체 노을이 없는 삶이란 ?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