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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 읍참마속의 원인, 산이 아니라 '물'?

최종수정 2019.05.14 15:29 기사입력 2019.05.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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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마다 물이 넘치는 형주 출신 마속...식수난 생각못해
행정능력 우수, 전략은 잘 짰지만...실전경험 부족 못 넘어

(사진=인천 차이나타운 삼국지벽화거리)

(사진=인천 차이나타운 삼국지벽화거리)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삼국지을 통해 비롯된 수많은 사자성어 중에 오늘날까지 많이 쓰이는 것 중 하나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베었다"는 뜻으로 공정하게 법을 세우기 위해 최측근을 쳐내야만 하는 지도자의 고뇌, 혹은 그래야되는 상황이 벌어질 때 많이 쓰는 말이다.


정치권에서 흔히 쓰는 읍참마속의 의미를 제외하고, 전술적 측면에서의 읍참마속은 보통 산악전(mountain warfare)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사자성어로 쓰인다. 읍참마속의 직접적 원인이 바로 가정(街亭) 전투에서 마속이 산악전에 대패하면서 발생하게 됐기 때문이다. 다소 실전경험이 부족했다고는 해도 마속은 나름 전략가로서 식견도 있었고, 제갈량이 인정하는 장수였으며 유비군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종군한 경험도 있었지만 처참할정도로 패배했다.


이렇게 속절없이 패배한 이유를 두고 고대부터 여러 설들이 부딪혔다. 글도 모르던 부장 왕평조차 진을 치면 안된다는 산 위에 나름 전략가이자 제갈량의 수제자라던 마속이 진을 친 이유가 명확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단순히 고립되기 쉬운 산악 지형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산악전 경험이 전무해 전략적 오판을 한 것만으로 그리지만, 실제 그의 패배원인에는 산보다는 '물'이 더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중국 삼국시대 당시 가정전투가 있었던 현재 간쑤성(甘肅省) 친안현(秦安縣) 지역에 세워진 비석 모습. 현대에도 이 지역은 상당히 건조한 지역이며, 매해 봄철마다 대규모로 황사가 몰아치곤 한다.(사진= 중국 간쑤성 친안현 홈페이지/ www.qinan.gov.cn)

중국 삼국시대 당시 가정전투가 있었던 현재 간쑤성(甘肅省) 친안현(秦安縣) 지역에 세워진 비석 모습. 현대에도 이 지역은 상당히 건조한 지역이며, 매해 봄철마다 대규모로 황사가 몰아치곤 한다.(사진= 중국 간쑤성 친안현 홈페이지/ www.qinan.gov.cn)



역사서 삼국지를 비롯해 후대의 사가들이 이야기하는 마속의 주요 패배이유는 산 위에 진을 쳤을 뿐만 아니라 적장인 장합에게 식수 보급로를 뺏겼기 때문이다. 장합이 산을 포위한 뒤, 식수로를 끊고 산 아래부터 불을 지른 후 포위를 풀지 않자 갈증에 지친 마속의 병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버렸고, 진형이 무너지면서 결정적 패배를 당했다는 것. 마속은 정말 식수로가 끊길 수 있다는 상황을 모르고 산상에 진을 쳤던 것일까?


마속의 전략적 오판은 그가 가지고 있는 산(山)의 이미지와 그가 싸웠던 전장의 산의 현실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마속은 오늘날 중국 후난성(湖南省) 지역인 형주(荊州) 사람으로 이 지역은 양쯔강 중류 지역으로 사방천지가 물이고 산마다 계곡이 훌륭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지형에서는 산과 연결되는 식수로를 끊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고, 산속 계곡마다 물이 풍부하기 때문에 식수로 고생할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싸웠던 가정은 오늘날 간쑤성(甘肅省) 친안현(秦安縣) 일대로 그때나 지금이나 스텝 유목지대와 사막이 뒤섞인 매우 건조한 지역이다. 더구나 당시 서기 228년 봄에 출정한 촉군의 상황을 고려할 때, 황사가 몰려오는 대단히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근처에 큰 하천도 없던 가정 일대에서 산상에 진을 치고 고립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마속은 자신의 고향처럼 산속 계곡에 물이 흐르거나 우물을 파면 물이 나올 것이라 오판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 삼국시대 가정에 있던 소규모 성채를 복원한 모습(사진= 중국 간쑤성 친안현 홈페이지/ www.qinan.gov.cn)

중국 삼국시대 가정에 있던 소규모 성채를 복원한 모습(사진= 중국 간쑤성 친안현 홈페이지/ www.qinan.gov.cn)



또한 마속은 유비의 입촉 이후 이 건조한 서량, 한중 일대 지역 전투에서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제갈량의 남만 원정에는 잠시 기록에 등장하지만, 그 전후 한중전투 등 주요 전투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내정을 맡았거나 후방에서 보급 등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해당 지역의 특성을 별반 모르는 상태에서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고 가정의 선봉장으로 나온 셈이다. 적장인 장합 역시 원래 이 지역에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오늘날 베이징 인근의 화북지방에서 활약했던 장수로 초반에 한중일대에 부임왔을 때는 장비에게 참패당한 바 있다. 전투에서는 전략가로서의 안목보다는 실전경험이 훨씬 중요한 것임을 알려주는 사례들이 많았음에도 마속은 자신의 오판을 지나치게 과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장수에게 전략적 요충지를 맡긴 총사령관인 제갈량의 책임 역시 작지 않았던 셈이다. 전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유비는 앞서 제갈량에게 마속은 대임을 맡길만한 인물이 아님을 이야기했지만, 제갈량은 같은 형주출신이며 행정능력이 우수한 그를 중용했다. 하지만 전장은 세치의 혀와 훌륭한 서체만 가지고 승리할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니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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