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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우희숙의 '아랫니 하나'

최종수정 2013.11.26 11:14 기사입력 2013.11.2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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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니 하나 바깥에 있다/여든 해 동안/물어 뜯고 씹고 맷돌처럼 갈며 산 시간이/저리도 고요할 수 있을까/우수수우수수 우수수수/치근이 다 빠져나간 자리마다/침묵들이 단단하게 아물었다/혀가 침묵을/혀가 아랫니를 둥글게 감싸 안는다/목젖을 치받아 오르던/부러진 생니의 드센 기억도/봄날처럼 유순해졌다/묘지의 초라한 묘비처럼/가장자리 모질게 쪼개진 줄도 모르고/아랫니 하나/시간을 꼭 붙들고 서 있다

우희숙의 '아랫니 하나'

■ 물성(物性)에는 영혼이 없다지만 그건 인간의 편견이다. 모든 영혼을 품에 안고 있는 우주라는 물성은 어떻게 된 것인가. 지구라는 물성은 또 어떤가. 인간의 몸은 물성이 아닌가. 물성이 없어보이는 그 지점에서 인간을 감동시키는 영성이 발생하는 것을 주목한 것은 추사 김정희였다. 왕희지가 아름다운 필법을 전한 뒤 1000년이 지나자 그 메신저였던 종이들이 모두 삭아버렸다. 사람들이 베낀 것을 또 베낀 짝짝퉁들이 명맥을 이어왔지만 왕희지 정신을 복사해내지 못한 필법들이 처음과는 아주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그나마 왕희지 필법을 물고 있는 것은, 쇠와 돌에 새긴 글씨였다. 금석(金石)학이 생겨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저 돌은 무슨 신념으로 저토록 고집스럽게 저 글씨의 원형을 그대로 물고 있단 말인가, 그것을 추사는 잔서완석(殘書頑石, 남은 글씨를 남겨 지니고 있는 고집스런 돌)이라 이름 붙이고 누각에 모셨다. 우희숙은 팔순 할머니의 구강 속에서 80년 시간을 물고있는 도도한 치아 하나에서, 기념비적인 물성을 발견한다. 살아남은 것이 견딘 시간. 그보다 더 살아있는 존재를 감동시키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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