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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여행가의 밥] 아산 외암민속마을의 여름과 시골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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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마을과 그렇지 않은 마을의 결은 아주 다르다. 안동의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에서 느끼는 생동감이란 것을 용인 민속촌에서는 도통 느낄 수 없다. 충남 아산에도 양반집과 초가가 어우러지고 집집마다 돌담으로 둘러져 있는 전통 마을이 있다. 아산 외암민속마을이다.


한여름 낮의 타임슬립, '아산 외암민속마을'

온천으로 유명한 아산에는 조선 후기 중부지방의 향촌 모습을 보여주는 이름난 민속마을이 있다. 설화산 자락에 자리한 외암 민속마을은 5백여 년 전 정착한 예안 이씨 일가가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며 살고 있다. 마치 타임슬립한 듯 예스러움이 넘쳐난다. 마을에는 원래 여러 성씨가 살았지만 조선 명종(1545~1567) 때 예안 이씨 이사종이 세 딸만 둔 진한평의 첫째 사위가 되어 이곳으로 터를 잡으면서 후손들이 번창하게 되었고, 후손 중에 많은 인재가 배출되자 점차 예안 이씨를 중심으로 하는 동족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는 집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참판댁, 감찰댁, 참봉댁, 병사댁, 종손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붙여졌다. 특히 고종이 하사한 집이 눈에 띄는데, 참판을 지낸 퇴호 이정렬(1868~1950)의 ‘참판댁’이다. 목조 기와집 두 채와 돌담이 인상적인 고택으로, 이사종의 11세손인 이정렬은 할머니가 고종비인 명성황후의 이모이기 때문에 명성황후로부터 각별한 은총을 받았다고 한다. 고종으로부터 퇴호거사(退湖居士)라는 호를 받았던 그는 스물넷에 과거에 급제하여 참판까지 오른다. 그러다 서른넷이 되던 해에 일본이 강제로 통상조약과 사법권이양을 요구하자 고종황제에게 당시의 외무대신을 탄핵시킬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나라를 팔아먹는 조정의 신하가 될 수 없다며 낙향하여 칠은계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진다.


외암 정사는 추사 김정희가 썼다고 전해지는 관선재(觀善裁)라는 편액이 걸려 있어 관선재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추사가 아닌 수암 권상하의 글씨라는 의견도 있다. 영암군수를 지낸 이상익이 살던 집이어서 영암군수댁이라고도 불리는 건재고택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에서는 정월 보름을 전후하여 느티나무제와 장승제를 지내며 10월이 되면 전통문화와 민속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짚풀문화제가 열린다.


60여 채의 기와집과 초가집에서 둘러친 돌담은 합치면 그 길이가 5,300미터나 된다고 한다. 돌담에는 이끼가 자란 곳도 있고 호박넝쿨이 뒤덮은 곳도 있다. 돌담 너머로 꽃이 피어 있기도 하고 부지런히 텃밭일을 마친 아낙들이 빨랫줄에 매단 모자며 장갑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로처럼 돌담이 놓인 마을을 걷다 보면 마음속에 고요가 찾아든다. 사람 사는 곳이라 흘끔흘끔 엿보는 관광객이라 미안해지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파는 식혜나 술 한 잔에는 시름을 잊게 하는 묘한 에너지가 숨어 있다.


충청 지방의 전통적인 살림집 모습을 잘 간직한 외암민속마을. 마을 입구에는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내가 흐른다.

충청 지방의 전통적인 살림집 모습을 잘 간직한 외암민속마을. 마을 입구에는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내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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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취화선’과 ‘태극기 휘날리며’, ‘클래식’ 등의 로케지로 유명한 마을의 풍경.

영화 ‘취화선’과 ‘태극기 휘날리며’, ‘클래식’ 등의 로케지로 유명한 마을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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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것과 자연으로 넘치는 마을. 항아리 화분 하나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옛 것과 자연으로 넘치는 마을. 항아리 화분 하나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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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와유밥집의 콩밭 옆 만찬, '신창댁 시골 밥상'

외암민속마을에서 늦은 점심을 배불리 맛있게 맛볼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우연의 조합 덕이다. 밥 때를 지난 시간에 찾아 허기가 진 상태였고, 미리 알아봐둔 국밥집의 위치를 찾지 못해 헤매던 차였다. 그리고 우리가 그 집 앞을 지날 때 촌부가 던진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아직 식사 안 했으면 먹고 가유~”

그렇게 신창댁이라는 집의 콩밭 옆 평상에 앉게 되었다. 청국장을 먹을 것이냐, 된장찌개를 먹을 것이냐에 햄릿증후군 증세를 보이다가 주문한 것은 된장찌개. 혼자서 손님을 맞고 밥상을 차려 상을 내오는 촌부는 주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엌으로 사라졌다. 평상에 앉아 한참 콩밭 구경을 하고 있으려니 바람에 된장찌개의 향이 그대로 전해졌다. 반가운, 진짜 시골 된장의 냄새였다.


더 이상 된장찌개향만 맡고 기다리다가는 숨이 넘어갈 듯하여 엉덩이를 들썩거릴 찰나 사라졌던 촌부의 손에는 네모난 스테인리스 쟁반이 들려있었다. 쟁반에는 뚝배기에 끓인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와 흑미밥, 애호박볶음, 콩조림, 생마늘, 깻잎장아찌, 열무김치 등 십여 가지의 반찬들이 얹어져 있었다. 가짓수가 많은 반찬 그릇을 상에 하나하나 얹고 치우기 힘들었는지 촌부는 우리에게 괜찮다면 스테인리스 쟁반째 둥그런 나무밥상에 얹고 먹어달라고 했다. 숭덩숭덩 썰어 넣은 두부와 부추가 전부였지만 콩의 모습이 살아 있는 된장찌개는 정직한 맛이 났다. 애호박과 열무에는 여름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여름밥상에 어울리지 않는 듯하였으나 중간중간 맛의 포인트를 살린 것은 묵은지볶음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는 하지만 시골 할머니댁을 떠올리게 하는 민속마을에서 시골 밥상을 받으니 밥 한 공기로는 부족했다. 그렇게 밥 두 공기를 싹싹 비우며 여름날의 허기를 신창댁의 시골상에서 채웠다.


할머니댁에 놀러 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촌부의 손녀딸에게 밥값을 치르고 나서 대문을 나서 몇 걸음 지나자, “맛있게 먹었슈?” 어디에선가 촌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진 구수한 후식은 “또 와유~”


밥을 먹고 나서 알게 된 것인데 신창댁은 홍경래의 난을 진압한 이용현과 연이 있는 집이었다. 이사종의 9세손인 이용현은 무과에 급제하여 총관 등을 지낸 인물로, 외암민속마을에서 6세손까지 살아 살던 집을 병사댁이라 불렀다고 한다. 후손은 서울로 이사를 갔고 이제 마을 사람들은 신창댁이라 하는데, 이사종의 12세손인 이세열의 부인의 친정이 신창인 데서 기인했다고. 사랑채가 따로 없는 안채는 마을에서 유일한 모양을 지니고 있다.


콩밭이 펼쳐진 평상에서 받은 시골 밥상. 된장을 주인공으로 여름 찬거리가 객들을 맞는다.

콩밭이 펼쳐진 평상에서 받은 시골 밥상. 된장을 주인공으로 여름 찬거리가 객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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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키운 콩으로 만든 된장과 청국장을 팔고 민박도 치는 외암민속마을의 신창댁.

직접 키운 콩으로 만든 된장과 청국장을 팔고 민박도 치는 외암민속마을의 신창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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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mation

아산시청 http://www.asan.go.kr/culture/, 1577-6611(아산시 콜센터)

외암민속마을 http://www.oeammaul.co.kr,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9번길 13-2, 041-541-0848, 09:00~18:00(겨울철은 17:30까지), 어른 2,000원, 청소년·군인·어린이 1,000원

신창댁 041-543-3928, 된장찌개 5,000원


글·사진=책 만드는 여행가 조경자(http://blog.naver.com/travelfo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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