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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의 여행만리]꽃비 흩날리는 백제석탑, 고대왕국의 '찬란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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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1400년 전 백제로의 여정

왕궁리 오층석탑 주변에 아름드리 벚나무가 호위하듯 서있다. 꽃잎이 다 떨어진다 해도 꽃 진 자리에서 돋는 새잎이 연초록의 신록으로 물드는 풍경도 좋다.

왕궁리 오층석탑 주변에 아름드리 벚나무가 호위하듯 서있다. 꽃잎이 다 떨어진다 해도 꽃 진 자리에서 돋는 새잎이 연초록의 신록으로 물드는 풍경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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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해체 복원을 마친 미륵사지 석탑이 웅장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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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오층석탑과 미륵사지석탑에서 나온 사리함과 유리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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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보석박물관에 전시된 각종 보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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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옛 왕국 백제의 흔적을 찾아 떠나봅니다. 1400년 전 백제 후기의 뜨거운 바람이 일던 곳입니다. 찬란했지만 허망했고, 빛바랜 유적이 견뎌 온 세월을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백제의 유적지라면 충남 부여와 공주를 우선 꼽는 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전북 익산에도 옛 왕국의 흔적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습니다. 익산은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 부활을 꿈꾸며 일궈낸 성지입니다. 왕궁리 석탑이 들어선 궁터의 흔적은 무왕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백제 무왕이 누구인가요. 신라로 들어가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세기의 로맨스를 벌였던 서동, 그가 바로 무왕입니다. 그뿐인가요. 미륵사지에는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ㆍ최대(最大)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이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해체를 시작한지 20년만인 2019년 부재 1천627개를 짜 맞춰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꽃비가 흐드러지게 내리던 봄날, 1400년의 시간을 넘어 찰나와도 같았던 백제의 마지막 숨결을 찾아 갔습니다.


미륵사지 정문에 서자 미륵산 아래 흔적만 남은 미륵사지와 그 한켠에 당당하게 버티고 선 미륵사지 석탑이 눈에 들어왔다. 한 발 들이자 양쪽으로 연못이 반긴다. 연못 주변으로는 늘어진 버드나무들이 바람에 천천히 춤을 춘다. 1400년 전 미륵사 연못에 늘어져 있던 버드나무다.

백제 무왕이 미륵사지를 지은 내력은 삼국유사에 전한다. 백제 법왕이 귀족과의 힘겨루기 끝에 재위 2년 만에 숨을 거두자 그 뒤를 이은 게 무왕이었다.


삼국유사를 보면 "무왕이 어느 날 부인과 함께 미륵산의 절집 사자사에 향을 올리러 가다가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상을 발견한다. 가마를 멈추고 예를 올린 무왕은 '이곳에다 큰 절을 세우기 원한다'는 아내의 청을 허락한다." 부인 소원에 따라 연못을 메우고 세 쌍의 탑과 법당을 지었다. 동원, 중원, 서원 3원에 각각 1탑, 1금당을 세웠다. 당대로선 독특한 가람 배치였다. 약 1400년 세월이 흘러 탑 하나만 남았다.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다. 국내 석탑 중 가장 크고 오래됐다.


영조 32년(1756)에 간행한 익산 읍지인 금마지(金馬志)는 미륵사지 석탑에 대해 "높이가 10여장(丈)이며, 동방에서 가장 높은 석탑으로 속설에 전한다"며 "벼락 친 곳 서쪽 반은 퇴락했다. 흔들렸음에도 큰 탑은 그 후 더 이상 무너지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일제는 1915년 석재들이 일부 무너져 내린 미륵사지 석탑을 콘크리트로 수리했다. 이후 석탑은 약 80년을 콘크리트에 엉겨 붙은 채 버텼다.

2009년 해체 중 석탑의 기단부에서 나온 사리장엄 일체는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탑 조성의 내력이 새겨진 금판과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작은 금제 사리 항아리가 나왔다. 금제 항아리 안에 다시 작은 금항아리가 들어 있었다. 그 안에 깨진 유리병과 사리 13과를 비롯해 99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금판의 글씨를 해독하자 누가 언제 무슨 의미를 담아 이리도 거대한 석탑을 세웠는지가 뚜렷해졌다. 1400여 년 만에 꺼내진 시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생생했다.


해체한 미륵사지 석탑을 다시 맞추는 작업이 시작됐다. 1400여 년 만에 빛을 본 13과의 사리가 다시 탑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단일문화재 중 최장 기간인 20년간의 수리ㆍ복원한 결과가 지금 미륵사지터에 우뚝 서 있다. 높이 약 14.5m, 폭 12.5m, 무게 약 1830t 석탑엔 목조건축 기법이 녹아 있다. 층마다 모서리 기둥이 살짝 높고 지붕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끝은 하늘을 향한다.


올해 1월 증축 재개관한 국립 익산 박물관은 미륵사지 가장 낮은 곳에 있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한 금제 사리내호(보물 제1991호), 왕궁리 오층석탑에서 발견한 금동제 여래입상과 청동방울(국보 제123호), 입점리 고분에서 발견한 금동신발 등 당대 사리 장엄구, 공예품과 생활 도구 등을 전시한다.


미륵사지 뒤편 미륵산도 올라보자. 정상에서는 미륵사지의 전경과 함께 나지막한 구릉으로 이뤄진 익산 땅의 장쾌한 전망이 펼쳐진다. 미륵산 북쪽 자락에 미륵산성이 있다. 조선시대까지 모두 여섯 번 고쳐 쌓았다는 기록 외에는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아무런 단서도 없다. 다만 향토학자들은 백제시대 미륵사지를 중심으로 한 익산을 방비하기 위해 산성을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륵사지 인근에 왕궁리 오층석탑이 있다. 위용은 미륵사지의 석탑만 못하지만 빼어난 비례와 힘찬 자세로 서 있다. 미륵사지 석탑을 본떠 만든 것이라는데, 균형과 비례는 물론이거니와 섬세한 선과 간결한 생김새가 한눈에도 '잘생겼다'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오층석탑은 호위하듯 늘어선 아름드리 벚나무숲 너머에 있다. 그러니 이 탑은 벚꽃이 만개했을 때 최고의 시간을 맞는다. 분홍빛 벚꽃잎이 꽃비로 분분하게 내릴 때 그 사이로 바라보는 석탑의 자태가 가히 최고다. 그저 고요하게 탑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몇일 전 내린 봄비에 꽃잎이 다 떨어진다 해도 꽃 진 자리에서 돋는 새잎이 연초록의 신록으로 물드는 풍경도 좋다.


왕궁리 석탑의 매력적인 자태는 주변을 정갈하게 다듬어낸 정성과 함께 석탑 뒤쪽 저 멀리 구릉에다 몇 그루의 운치 있는 소나무들을 그림처럼 남겨 두어 비로소 완성된다. 덕분에 봄볕 속에서 벚꽃잎이 날리는 석탑 주변을 거닐면서 고대국가의 왕궁, 혹은 그 뒤에 지어졌다는 절집을 마음속으로 지어볼 수 있다.


1965년부터 이듬해까지 보수작업을 하던 왕궁리 석탑에서도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사리를 담은 사리함과 사리병을 비롯해 금강경을 금판 위에 눌러 찍은 금강경판 등이 발견됐다. 연꽃과 당초 문양을 정밀하게 새긴 사리함도 그렇고, 매끈한 녹색의 기품 있는 사리병의 자태는 그것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왕궁 유적 입구 쪽에는 부근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하는 유적전시관도 세워져 있다.


익산=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호남고속도로 익산 나들목으로 나와 720번 지방도로를 타고 금마사거리에서 우회전해 722번 지방도로로 바꿔 탄다. 금마면사무소 앞에서 미륵사지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된다. 왕궁리 오층석탑은 금마사거리에서 왕궁면소재지 방면으로 좌회전하면 금방이다.


[조용준의 여행만리]꽃비 흩날리는 백제석탑, 고대왕국의 '찬란한 슬픔' 원본보기 아이콘

△먹거리=황등비빔밥(사진)은 익산의 맛으로 꼽힌다. 밥을 살짝 비벼 고기국물에 토렴을 한 뒤 그릇을 데워 수분을 말린 뒤 육회를 얹어 내는 게 특징이다. 신생대반점은 춘장과 된장을 일정 비율로 섞은 짜장을 비벼 먹는 된장짜장이 특이하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익산역 주변에 피순대 전문점이 여럿이다.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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