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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B]"성 전환 하사·숙대 입학생, 용기 큰 힘" 트랜스젠더 단체 대표 김겨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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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소수, 더 나은 비주류 세상

4년 전 3000만원 모아 수술
학창시절, 성폭력 등 괴롭힘 시달려

"끊임없이 존재 증명해 보여야"
대학 들어갔지만 1년 안 돼 자퇴

지난해 11월 6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김겨울씨 (제공=트랜스해방전선)

지난해 11월 6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김겨울씨 (제공=트랜스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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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모든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차별도 없었으면 좋겠고. 모두가 일상적인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세상, 그게 해방이죠. 사소한 것도 차별 받지 않고 괴롭힘 없고 또 괴로워하지 않는…."


김겨울(27)씨는 4년 전 성전환 수술을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초등학생이 될 무렵 본인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이후 '나는 뭘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13살 정도였을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 '나는 남자는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씨를 서초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트랜스젠더가 주축이 된 모임 '트랜스해방전선'의 대표를 맡고 있다. 집행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시스젠더(cisgender) 남성 호모섹슈얼 데이빗(활동명·27)도 함께 했다. 시스젠더는 타고난 생물학적 성과 젠더 정체성이 일치한 사람이다. 93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다른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다 만났다.


청소년 시절 호르몬 주사를 맞기 위해서는 정신과에 들러 '젠더고사'를 치러야 했다. 주사는 산부인과나 비뇨기과에서 맞지만 정신과 의사의 진단이 있어야 한다. 고사라는 이름이 붙는 건 질문도 이상하지만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질문은 대략 이러하다. '어렸을 때부터 인형 갖고 놀기를 좋아했고 여자친구가 더 많았습니까?' '잘해준다'고 하는 병원이 있으면 사람이 몰린다. 비수도권은 주사를 맞을 수 있는 병원조차 전무하다.


신분증이 나오면서 일상은 더 힘들어졌다. 숫자 1에 갇혀 그는 끊임 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주민등록증만 내면 숫자 때문에 은행이나 병원이나 어딜 가든 본인 맞냐고 물어보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사소한 경험들이 쌓이다 보니까 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법적인 성별을 바꿔야겠다 생각한 거죠. 그러려면 수술이 필요했고요."


지금은 행복을 바라지만 당시엔 부모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수술비 3000만원을 밤샘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았다. 수술을 하고 한 달 간 병원에 누워 있었다. 퇴원했지만 체력이 약해진 탓에 1년을 집에서 쉬어야만 했다.


지독한 편견, 일상의 행복 없는 삶
트랜스젠더의 노동권 보장 안돼
여전히 부정 여론 거세

17살 때부터 머리를 길렀던 김씨는 학창시절부터 끊임 없이 성폭력에 노출됐다. 행동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양한 괴롭힘을 당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봐 대학도 들어갔지만 몇 개월 만에 포기했다.


"대학에도 남성 주민번호로 들어갔더니 다름에 대한 편견이 지독하더라고요. 저 스스로도 못 견뎌서 그만두게 됐어요."


데이빗은 트랜스젠더가 주민등록번호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혼자서는 뜻대로 할 수가 없어서 예전에는 부모 외에도 자식이 있다면 자식의 동의까지 얻어야 했다"며 "또 판사 재량마다 너무 달라서 의사 진단서가 있는데도 성기를 화장실 가서 확인하고 나서야 결정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떤 분은 성기 사진을 화장실 가서 찍어 오라는 얘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수술 전 이력서를 보면 주민번호는 남자인데 면접 볼 땐 여자니까 쉽지 않다"며 "수술비는 마련해야 하니까 유흥업소에 가게 되고 수술을 하고 나서도 취업하기가 또 쉽지 않으니까 다시 유흥업에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데이빗은 "4대 보험 같은 기본적인 안전 보장은커녕 노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한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법적으로 원하는 성별을 얻었다 하더라도 4대 보험이 되는 '일반 직장'에 들어가기는 어려웠다. 이력서를 들고 가면 '출신 학교가 남학교 혹은 여학교 인데?'라는 질문부터 수술 때문에 생긴 공백 기간에 대한 질문까지 본인이 트랜스젠더인 것을 밝혀야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는 그만두는 것이 관례였다.


지난해 11월 6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진 모습 (제공=트랜스해방전선)

지난해 11월 6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진 모습 (제공=트랜스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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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렌스젠더 관련 이슈가 사회 전면에 등장했다. 성전환 수술로 강제 전역한 육군 부사관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에 입학했지만 입학을 취소한 학생 등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데뷔한 지 19년이 지났는데도 뜻밖에 부정 여론이 거셌다.


김씨는 "자기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마치 인종차별처럼, 다른 집단을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이 혐오로 이어지기도 하는 그런 연장 선상"이라고 했다. 또 "일부는 트랜스젠더가 남자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 다음, 여성성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그런 모습을 싫어하는 것 아닐까 짐작해보는데 우리는 여성으로 정착했기 때문에 내가 남자로 보이면 또 어떤 괴롭힘이나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많은 여성들도 겪고 있는 아름다움, 여자는 단정해야 하고 메이크업을 해야 하는 억압을 트랜스 여성도 표현이 되는 것이고 구조적인 문제인데…."


데이빗이 말을 이어 받았다. "개인을 탓한다고 사회가 바뀔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서도 "트랜스 젠더 남성, 여성들은 살기 위해서 드러내는 것인데, 구조적으로 개인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걸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트랜스젠더라고 다 이렇다는 건 일반화 된 오류"라고 지적했다. 김씨 역시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분명 화장하기 싫어하는 '탈코르셋' 여성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데이빗은 "이미지가 만들어 낸 허상"이라면서 "여대에 남성 교환학생도 있고 트랜스젠더가 온다고 범죄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건 허구"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소수자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허상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니까 우리를 해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 것 같다"고 했다.


용기 있는 목소리로 인식 개선될 것
차별금지법 제정 꼭 필요
평탄하고 평온한 삶이 행복
트랜스젠더란 이유로 소모·혐오 되지 않기를
영웅 혹은 저주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세상 바라

이슈가 되는 일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데이빗은 "트랜스젠더의 목소리가 나감으로써 많은 분들이 용기를 얻고 또 트랜스젠더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져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부정적인 인식도 조금씩 줄어들 수 있을 것이고 마음 속으로는 싫어할 수 있겠지만…." 이번엔 김씨가 말을 이었다. "대놓고 입 밖으론 얘기하지 않겠지."


데이빗은 "지금의 구조 자체는 게이나 트랜스젠더가 숨기고 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돼 있는데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새로운 언어도 만들어지고 감수성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살인법이 있어도 살인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하면 안 되는, 부도덕한 일이라는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둘에게 행복은 뭘까.


김씨는 평탄한 삶, 평온한 삶. 가끔은 친구들 만나서 술도 한 잔 할 수 있는 삶이라고 했다. 그는 "수술을 끝내기 전까지 일상적 행복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며 "모두 끝내고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이 되게 소중하다"고 말했다.


데이빗은 "트랜스젠더를 밝혔다는 이유로 소모되고 소비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는 그런 세상. 우리가 영웅 혹은 저주의 대상이 되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6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진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제공=트랜스해방전선)

지난해 11월 6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진하는 사람들의 뒷모습 (제공=트랜스해방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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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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