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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세계를 나눈 선, 인간을 비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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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국경선, 인간의 헛된 욕망에서 비롯
사이크스피코 협정·디트로이트 사례 등
수많은 선 오늘날까지도 분쟁의 씨앗

배타적 경제수역·위성궤도 배치 등
바다·하늘·우주로 확장된 새로운 선
경계 이해하는 일은 인간 이해하는 일

인류 최초의 국경은 기원전 4000년경, 나일강 유역에서 하(下)이집트와 상(上)이집트를 나누던 경계선으로 추정된다. 이 경계는 오늘날 카이로 남쪽, 북위 30도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원전 3100년 무렵 두 왕국이 통일되면서 이 경계선은 사라졌다. 비록 물리적인 경계는 없어졌지만, 두 왕국의 상징은 이후 수 세기 동안 통치자의 예복과 휘장 등에 남아 왕권의 상징으로 이어졌다. 경계가 사라져도 그 의미는 오래도록 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책 어때]세계를 나눈 선, 인간을 비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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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시대를 초월해 전 세계 47개의 경계를 통해 인류사를 조명한다. 지도 위에 그어진 가느다란 선 하나에 수천 년의 권력, 전쟁, 정체성과 분열의 역사가 응축돼 있음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의 경계를 새롭게 바라본다.


저자는 오랜 세월 속에 겹겹이 쌓인 경계선 중 47가지를 선별해 그 배경과 결과를 정치·지리·역사·문화 등 다층적 관점에서 풀어낸다. 고대 이집트의 최초 국경에서부터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대륙의 경계, 유럽 열강이 제멋대로 나눈 중동과 아프리카의 분할선, 냉전의 유산으로 한반도를 가른 38선과 긴장이 여전한 비무장지대, 머지않아 새로운 경계로 등장할 '우주의 국경'까지. 저자는 인류가 지도 위에 끊임없이 선을 그어온 이유와 그 속에 숨은 탐욕, 야망, 두려움의 역사를 추적한다.

특히 그는 세계를 나눈 수많은 선이 인간의 헛된 욕망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 대륙을 임의로 분할했다. 그 과정에서 민족과 언어, 문화는 철저히 무시된 채 제국의 이해관계만이 우선됐다.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적 경계 긋기였다.


이 같은 무지와 오만이 낳은 수많은 선은 오늘날까지도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을 자로 긋듯 나눈 비밀 협정,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민족과 종교, 언어를 무시한 채 제국의 이익만을 기준으로 한 경계 설정은 중동 지역의 복잡한 분열 구조를 낳았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사례도 유사하다. 확장과 개발에 대한 집착이 도시의 기반을 무너뜨렸고, 인종 차별과 배제의 심리가 내부 분열을 심화시켜 결국 대도시 최초의 파산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책은 '우리'와 '타자'를 구분 짓는 경계선을 통해 인간의 야망과 욕망, 탐욕, 그리고 경계 너머를 두려워하는 나약함을 조명한다. 인류가 어떤 선을 그었고, 그 선이 어떻게 세계를 만들었으며,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해왔는지를 차분히 탐구한다. 경계를 이해하는 일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경계는 과거의 완성형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롭게 쓰이고 있다. 이를테면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비교적 최근 등장한 해양법과 함께 규정됐으며, 항공 영역 역시 20세기 중반 이후 항공 교통의 확장과 함께 세분화됐다. 우주는 여전히 '최후의 경계'로 남아 있다. 저자는 지구 대기와 우주를 가르는 가상의 기준선 '카르만 라인(Karman Line)'을 둘러싼 논쟁, 위성 궤도 배치 경쟁, 달의 안전지대를 두고 벌어지는 외교적 갈등 등을 생생히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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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저자는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세계의 경계선을 통해 과거의 역사적 결정뿐 아니라 현재의 국제 질서와 미래의 변화까지 입체적으로 통찰한다. '인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으며, 앞으로 어떤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남긴다.


우크라이나 전쟁, 남중국해 분쟁, 인도와 중국 국경 충돌, 가자지구 사태 등 세계 곳곳의 분쟁은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이 책에서 다룬 사례들과 맞닿아 있다. 사례 중심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지정학적 사고를 익히는 훌륭한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존 엘리지 지음 | 이영래 외 1명 옮김 | 21세기북스 | 416쪽 | 2만4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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