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서울 혜화서 대학로파출소 나선영 순경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경찰 가문
"자랑스러운 딸이자 손녀, 자랑스러운 후배가 되자."
서울 혜화경찰서 대학로파출소에서 만난 나선영 순경(30)은 출근할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긴다. 나 순경은 "경찰 제복은 아무나 입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제복을 입는 순간부터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에도 조직과 국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매번 다짐한다"고 말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경찰인 나 순경의 삶에서 경찰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나 순경의 할아버지는 1963년부터 30년간 경찰로 근무했으며, 아버지는 1989년 입직해 현재 대구 수성경찰서 소속 지구대장으로 재직 중이다. 작은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까지 대부분 경찰로, 명절이면 자연스럽게 경찰 이야기가 오간다. 지난해 11월에는 나 순경이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근무하던 남편과 결혼해 경찰 식구가 한 명 더 늘었다.
온 가족이 경찰인 가정환경에서 경찰에 대한 애정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나 순경이 어릴 적부터 '경찰이 없으면 국민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했고, 아버지는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경찰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강했다고 한다.
나 순경은 경찰이 되기 전에는 아버지의 경찰 자부심이 과도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항상 개인보다 경찰 조직을 생각한다는 아버지를 보며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다고 생각했다"면서도 "막상 경찰이 되고 야간에 폭력 사건 등 위험한 순간을 자주 접하다 보니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나의 사명감은 아버지로부터 왔다"
나 순경에게 아버지는 부모를 넘어 든든한 선배이자 조언자다. 나 순경은 "경찰 생활을 하면서 아버지가 말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며 "'항상 조직의 명예를 훼손할 일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는데 실제로 경찰이 돼 보니 제복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했다.
아버지로부터 꾸중을 들을 때도 있다. 2023년 가을 화재 현장에서 나 순경은 의욕이 앞선 나머지 화재가 진압되자마자 무작정 건물에 진입한 적이 있다. 나 순경은 "당시 장비를 착용하기도 전에 현장을 살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입하려 했다가 선배들이 말렸던 경험이 있다"며 "아버지가 이를 듣고 '경찰이 다치면 그 누구도 지키지 못한다'며 혼을 냈는데, 그 뒤로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경찰인 내가 다쳐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지낸다"고 했다.
제복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나 순경은 경찰 정신뿐 아니라 체력 관리에도 열정을 쏟는다. 나 순경은 쉬는 날이나 퇴근 이후 항상 5㎞ 달리기를 하며 체력을 다지고 있다. 그는 "아버지는 '체력이 부족하면 시민을 지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며 "이 말을 듣고 체력이 부족한 경찰이 되지 않기 위해 달리기부터 수영 등 다양한 운동을 주기적으로 한다"고 했다.
"이런 게 경찰 DNA"
가족에게 물려받은 사명감은 퇴근 후에도 이어진다. 나 순경은 평소에도 주변 곳곳에서 위험 상황을 살피는 습관이 있다. 지난해 겨울에는 퇴근하고 남편과 식사하러 가던 도중 피를 흘리는 시민을 발견했다. 당시 나 순경은 망설임 없이 현장을 정리하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부상자의 지혈을 도왔다. 나 순경은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저절로 몸이 반응했고 그 결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문의 DNA'는 사건을 처리할 때도 빛을 발한다. 지난해 말 나 순경은 알 수 없는 곳에 감금된 여성을 찾아내 구출한 적이 있다. 당시 나 순경이 위치 추적을 시도했지만, 해당 지역이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이라 주소지를 특정할 수 없었다. 이때 나 순경은 피해 여성에게 전화를 걸어 창문 밖에 보이는 차량 번호를 확인한 뒤 곧바로 위치를 특정해 여성을 찾아냈다.
경찰로서 뿌듯함을 느낄 때가 많지만 힘든 순간도 있다. 나 순경은 "파출소 근무를 하다 보면 야간 순찰 중에 주취자를 많이 보게 된다"며 "이때 경찰에게 비협조적이고 욕설을 퍼붓는 시민들도 종종 있어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그는 "이때마다 아버지의 '시민들에게 감정을 담지 마라'고 한 말을 떠올리면 순간 욱하는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3대를 넘어 4대째 경찰을 위해"
나 순경은 다시 태어나도 경찰이 될 거라고 말했다. 나 순경은 "경찰로 생활하면서 시민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만큼 행복할 때가 없다"며 "과거 막연했던 경찰에 대한 사명감은 경찰이 되면서 더 뚜렷해졌다"고 했다. 나 순경은 "남편도 나도 아이를 갖게 되면 한 명은 대를 이어 경찰이 되기를 바란다"며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경찰 DNA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고 그 DNA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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