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거짓말 난무하는 국회
유권자 불신·정치혐오 초래
바른 언어로 정치품격 높여야
아나테이너라는 직업이 등장하기 전에는 아나운서가 우리말을 품위와 바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강성곤 전 아나운서 같은 이는 은퇴 후에도 바른 우리말을 지키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품위 있는 아나운서로서 구수한 MC 활동으로 평판 있던 이계진은 국회의원이 된 후에 야당이던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2년 넘게 활동했다. 당의 입으로 데뷔하며 재미있는 정치에 일조하는 '소변인(笑辨人)'이 되고 싶다는 황당한 첫 일성을 남겼다.
서로 독설로 흠집 내기에 골몰하던 여야 대변인 문화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고, 당에서도 야당의 대변인이 무르면 여당에 끌려다니게 된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큰소리 내지 않고 부드러운 논평으로도 뼈가 있는 내면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해 밀고 나갔다. 대변인의 논평 스타일만으로도 삭막한 정치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실천했다.
깡패를 동원해 몽둥이를 휘두르거나 의사당 안에 분변을 퍼부은 사람도 있었지만 과거의 국회의원은 대체로 사회에서 어른으로 인정받았다. 적어도 인품이 있고 말에 품위가 있고 서로를 인정하며 의정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요즈음 정치권을 쳐다보고 있자면 시정잡배(市政雜輩)만도 못하게 여겨진다. 우선 그들이 내뱉는 말의 행태부터 꼴불견이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일진대 그들의 말을 보면 정치가 4류라는 이건희 회장의 지적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정치인의 가장 큰 설화(舌禍)는 역시 이재명 대표의 형수에게 퍼부은 욕설일 텐데 이는 사인(私人) 간에 일어난 일이니 접어두더라도 가장 심각한 것은 증인이나 장·차관을 포함한 피감기관 등을 대상으로 윽박지르거나 고압적인 자세와 막말을 퍼붓는 말투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높은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지 알 수가 없다.
여야 상호 간의 고성, 욕설을 섞은 상호비방을 반복적으로 듣고 있자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대통령을 향해 귀태(鬼胎)라고 입에 담지 못 할 말을 할 정도로 부적절한 말을 배설할 뿐 아니라 '달창' '맘충' '한남충' 등 혐오성(嫌惡性)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정치인이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것은 더 심각하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은폐하고 거짓말한 것이 더 큰 문제가 되어 탄핵이 시작되자 압력에 못 이겨 사임한 것은 미국 정치사에 가장 큰 스캔들이다. 그만큼 정치인의 거짓말은 무엇보다 심각한 것인데 우리의 경우에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있고, 적당히 넘기고 있다. 더구나 면책특권에 뒤에 숨어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가짜 뉴스를 확대 재생산해 정치공세를 일삼는 것은 범죄임에도 처벌을 면하고 있어 더 심각하다.
이런 부적절한 정치인의 말은 국회의 품위와 권위는 물론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려 유권자의 불신과 정치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영국 의회는 부적절한 발언을 비의회적언어(unparliamentary language)로 보고 회의장 퇴장, 호명(naming)이나 직무 정지의 징계를 내리고 있다. 우리 국회도 국회의원의 말을 의장의 질서유지권 차원에서 엄격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계진 대변인이 시도 했던 것처럼 말로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국회 내에 말의 정화 운동부터 하기를 권한다. '국회의원의 바른말 선언'이라도 하게 하여야 할 판이다.
적대감과 증오에 가득 찬 정치권에 국민은 무슨 기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가황(歌皇)' 나훈아의 말대로 국민의 요구와 거리가 먼 이들의 행위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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