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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계엄이 남긴 절망의 언어, 희망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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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고령속 파괴적·배타적 언어
시민·헌재 상식의 언어에 무너져
시대를 초월해 '말'은 살아남아

[시시비비]계엄이 남긴 절망의 언어, 희망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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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존재' 인간은 언어로 표현되고 기록된다. 언어는 기록으로 남아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을 잇는다. 인간은 말(言)로 이루어져 있다. 말은 양날의 칼이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는 속담은 말을 잘하면 인기를 얻지만 잘못 쓰면 칼이 돼 자신을 찌른다는 말이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됐던 김형기 육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강골 검사'로 각인시키며 일약 스타로 만든 유명한 말을 면전에서 돌려주었다. 윤 전 대통령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을 수사할 당시 국정감사에 출석해 윗선의 부당한 수사 지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 말을 남겼다.

김 대대장은 지난 21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2차 공판기일 증인으로 출석해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며 심경을 밝혔다. 그는 "병사로 처음 입대한 이후 23년간 군 생활을 했는데 안 바뀌는 게 국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며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에 충성하고 조직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포효였다. 윤 전 대통령은 김 대대장의 발언을 줄곧 눈을 감은 채로 듣고 있다가 발언이 마무리될 때쯤 김 대대장을 응시했다고 한다.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그의 어록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12월 3일 밤, 윤 전 대통령이 쏟아낸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그날 밤 포고령의 언어는 가장 파괴적인 흉기였다. '파렴치' '만국의 원흉' '패악질' '즉각 처단'…. 말은 배타적이었으며 퇴보했다. 모든 국가 폭력은 '말'을 빼앗는 것부터 시작했다. 1980년대 신군부가 '광주의 언어'를 빼앗아 간 것처럼 그날 밤 전 국민에게 생중계로 전파된 '포고령'은 군사독재 시절 비상계엄문의 표절이었다. 반세기 만에 봉인을 풀어버린 '파시즘적 언어'는 국민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초연결된 세상에서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 통제를 받는다"는 말은 무용한 일로 끝났다. "국회로 달려갑니다." 시민들은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150분 동안 SNS를 통해 전례 없는 속도로 말을 나누고 행동으로 옮기며 비상계엄을 막아냈다. 시민들의 연결된 언어의 힘이 최고 권력자의 폭압적 언어를 무장해제한 것이다.

비상식적 배타적 언어의 비상계엄문을 심판한 것은 보통 사람의 상식적 언어로 쓰인 '헌재의 언어'였다. 헌재의 탄핵결정문 가운데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를 신속 결의할 수 있었던 건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임무 수행 덕분'이란 문장이 주목을 받았다. 국민이 이 문장에서 감명받은 건 우리 사회가 지향해 온 가치와 상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헌법의 언어로 확인받는 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살아남아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일'을 가능케 하며 어두운 밤에도 우리를 잇는 건 언어라고 했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남긴 말이다. "소설을 쓰는 동안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고,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연결한다"

조영철 콘텐츠편집1팀장





조영철 팀장 yccho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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