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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이젠 법정이 아니라 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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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발로 뛸 수 있을까요." 삼성 직원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다. 지난 몇 년간 한 발로는 재판 대응을 하고, 다른 한 발로는 실무를 챙기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총수의 사법 리스크가 이어지는 동안, 삼성은 글로벌 무대에서 전력을 다하기 어려웠다.


5년 만에 다시 삼성전자 기자실로 돌아와 보니 삼성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한때 '초격차'를 외치며 세계 1위를 자부하던 기업은 이제 '기술 경쟁력 복원'을 목표로 내걸었다. 최근 엔비디아에 납품할 반도체 제품의 품질 테스트 통과 여부가 속보로 다뤄질 정도니, 삼성의 현주소를 실감하게 된다.

오랜 법정 다툼이 삼성의 변화와 무관하다고 보긴 어렵다. 최근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 및 부당 합병 혐의에 대한 2심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후 2020년 부당 합병 및 회계 부정 혐의로 추가 기소되면서 약 9년간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서 두 차례 구속되어 총 560일간 수감됐고 185차례 법정에 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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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삼성은 기술 개발과 신사업 확장보다는 국내 여론과 정책 변화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총수의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전략적 의사결정과 투자가 지연됐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도 약화됐다. 무죄 판결이 나왔다지만 아직 법적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검찰은 이번 판결에 대해 상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대검찰청 산하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 외부 의견을 요청한 상태다. 무죄 결정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지만, 삼성 앞에 놓인 길이 아직 평탄하지만은 않다.


가장 큰 손실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지난 9년간의 재판은 단순한 이재용 개인의 법정 공방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지불한 과도기적 비용이기도 했다.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경영권 승계의 공정성, 법과 시장의 관계 설정 등 중요한 질문을 고민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도 불가피한 학습비를 치렀다. 이는 우리 경제와 기업 문화가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지만, 그 비용이 결코 적지 않았다. 글로벌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는 동안 삼성은 법적 리스크로 인해 투자와 전략적 판단을 주저하며 경쟁에서 뒤처졌다. 물론 이런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과거 삼성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시스템과 지배구조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이제 삼성의 과제는 더 이상 리스크 관리에 머무르거나 수세적인 대응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업(業)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고,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와 혁신을 가속해야 한다.

장기간의 법정 공방으로 이미 막대한 시간과 자원이 소모됐으며 더 이상의 법적 대응은 불필요한 비용일 뿐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사법 리스크의 악순환을 끊고, 연구개발(R&D)과 신사업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단기적인 실적 회복을 넘어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다지기 위해 기업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독립적인 경영 체계를 확립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오직 기술 혁신과 시장 개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때, 삼성은 비로소 진정한 도약을 이룰 수 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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