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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무안공항의 부치지 못한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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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미안해’ ‘보고싶다’
청사 2층 ‘추모의 계단’에 빼곡
참사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약속

[시시비비]무안공항의 부치지 못한 편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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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온 마음을 다한 어떤 위로로도 결코 위로할 수 없는 극한의 슬픔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에도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고 바랐던 프랑스 작가 크리스티앙 보뱅은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글쓰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단 한 편의 시라도 주머니에 있다면 죽음을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구원하는 길일 것이다. 산 자의 마음속에 맺힌 것이 못 견디고 밖으로 뛰쳐나올 때 그 사무치고 절절한 것이 죽은 자의 영혼을 울리는 서신이 됨을 믿는다.


제주항공여객기 참사 17일째인 14일 현재 희생자 179명이 모두 영면에 들었지만 이들에게 닿지 못한 편지는 무안국제공항에서 오지 않는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유가족과 추모객들은 포스트잇과 한 뼘도 안 되는 종이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꾹꾹 눌러 담아 슬픔을 달랬다. 공항 대합실과 사고 현장 인근 철조망에 붙여진 편지에 유족이 가장 많이 건넸던 말은 ‘사랑해’ ‘미안해’였다.

무안공항 청사 2층으로 가는 ‘추모의 계단’에는 유가족과 지인들이 쓴 수천개의 형형색색 손편지들이 빼곡하다. “여보, 너무 많이 보고 싶어요.” “엄마 나 이제 고3이야. 이제 좀 철도 들고 정신도 차렸는데 못 보여주게 됐네. 계속 나 지켜봐 주고. 사랑해.” “꿈에라도 찾아와. 기다리고 있을게.”


무안국제공항 대합실 추모의 계단에 제주항공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무안국제공항 대합실 추모의 계단에 제주항공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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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객들도 섣불리 건네기 어려운 위로의 말을 담아냈다. 무안공항에 ‘추모의 계단’을 만든 이는 이근호 손편지운동본부 대표다. 이 대표는 참사 소식을 접하자 무안공항에 위로의 메시지를 전파하고자 포스트잇과 펜을 챙겨 버스를 타고 무안공항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는 추모객들에게 “편지를 남겨달라”며 펜과 종이를 나눠줬다. 3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잃은 이 대표는 손편지운동본부를 만들고 세월호, 이태원 참사 때마다 현장을 찾아가 추모객들의 편지를 모아 유족들에게 전달해왔다. 공항 1층 계단 옆에는 ‘별이 된 그들에게’란 문구가 적힌 빨간 우체통도 놓여 있다.


제주항공기 참사 희생자의 장례가 마무리됐지만 유족들이 무안공항으로 돌아오고 있다. 제주항공여객기참사가족협의회는 오는 18일 희생자 넋을 기리는 합동추모제 일정과 사고 진상규명 등을 포함해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 청사 2층에는 유가족이 머물 임시 텐트가 그대로 남아있다.

지금 유족이 다시 무안공항으로 모이는 것은 무엇보다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우리는 유족의 비탄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서 의무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를 추적한 ‘대한민국 재난의 탄생’과 ‘우리는 재난을 모른다’를 쓴 홍성욱 교수(서울대 과학학과)는 “살아남은 사람은 죽은 사람의 희생에 빚을 진 채 조금 더 안전해진 세상에 산다”며 “그것은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의 힘든 싸움이 열매를 맺었기 때문일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재난을 직접 겪었든 겪지 않았든 재난 공동체다. 이를 공유하지 못하면 우리는 179명이 희생된 참혹한 재난으로부터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다. 비상계엄 정국에서 혼란한 정치공학이 이슈 블랙홀이 된 지금 우리가 이번 참사를 결코 잊으면 안 되는 이유이다.

조영철 콘텐츠 편집1팀장 겸 오피니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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