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또다른 AI의 대부 '후쿠시마 구니히코'
일본, '디지털 후진국' 오명 벗고 AI 집중
현대 폭발적인 AI혁명에도 뚜렷한 기여
인공지능(AI)의 물결은 노벨상까지 휩쓸고 있습니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 수상자도 AI 분야에서 나왔죠. 노벨상 과학 분야 3개 가운데 생리의학상을 제외한 2개를 AI가 가져간 것이죠.
물리학상은 인공신경망을 이용한 AI 머신러닝 분야의 기초를 확립한 연구진이 받았습니다.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입니다. 현대적 AI의 토대인 머신러닝 등 알고리즘을 처음으로 개발한 업적을 인정받았죠.
화학상은 AI를 활용해 단백질 구조 예측과 설계에 기여한 이들에게 돌아갔습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허사비스와 연구원인 존 점퍼 박사, 미국 워싱턴대의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가 공동 수상했죠. 딥마인드라는 이름은 특히 익숙하실 겁니다. 2016년 이세돌 9단을 상대로 대국을 펼친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개발사죠.
그간 노벨상은 인간의 창의성이나 과학적 발견에 대한 공인 성격이 짙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AI 연구자들이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 오르는 것은, 그만큼 AI가 인간 삶 깊숙이 들어왔다는 방증일 겁니다.
'AI 스타 학자'의 시대…기억해야 할 또 다른 이름 : 후쿠시마 구니히코
AI가 일상으로 들어오면서, AI 연구자들의 이름도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AI 4대 거장’이라는 별명도 만들었죠.
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한 힌튼 교수를 포함해,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 교수, 얀 르쿤 메타 최고 AI 과학자 겸 뉴욕대 교수, 앤드루 응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그들입니다. 힌튼 교수를 제외한 3명은 2018년 ‘컴퓨터과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했죠.
AI 혁명이 가속화하고 그 영향력이 확대될수록, 이들은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호명될 겁니다. 하지만 이들보다 앞서 AI 연구에 매진하고, 오늘날 AI 혁명의 기반을 닦았던 인물, 그러나 널리 알려지지 못한 사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후쿠시마 구니히코(Kunihiko Fukushima)입니다.
이름에서 아셨다시피, 그는 일본인입니다. ‘아직도 팩스를 쓰고, 도장과 현금을 선호한다는 일본’이라는 편견을 갖고 계시다면 특히 더 놀라셨을 겁니다. 그는, 바로 그런 일본이 낳은 AI의 또 다른 선구자였습니다.
산업 폐기물을 장난감으로 만지던 소년
후쿠시마는 1936년 대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땐 대만이 일본의 영토였죠.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기 전까지 여기서 자랐습니다. 전쟁 종식과 함께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도망치듯 돌아왔죠. 모든 재산을 남긴 채 귀국했기에, 소년 후쿠시마에겐 변변찮은 장난감도 없었습니다. 가끔 그의 삼촌이 건네주던 소형 변압기, 전기 모터와 같은 기계가 놀잇감이었죠. 그러나 전기와 전선은 후쿠시마의 상상력을 키웠습니다.
1966년 교토대학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쿠시마는 연구에 매진합니다. 그러다 1979년, ‘네오코그니트론(Neocognitron)’이라는 혁신적인 신경망 구조를 발표합니다. 쉽게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네오코그니트론은 사람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을 본떠 만든 시스템입니다.
가령 우리 눈앞에 빨간 사과가 있다고 해보죠. 그러면 우리는 일단 단순한 선과 모양을 보고, 그다음 둥근 형태를 파악하고, 마지막으로 '이것이 사과구나'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뇌의 복잡한 신경 연결망을 통해 이미지를 인식하고, 유사한 크기, 모양, 과거의 경험을 비교해서 분류하고 인식하게 됩니다. 사과의 크기가 달라도, 색깔이 달라도, 놓인 자세가 달라도 사과임을 알아봅니다.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고, 사자와 호랑이를 구별할 수 있는 이유죠.
합성곱신경망(CNN)의 토대가 된 ‘네오코그니트론’
뇌는 이미지를 단계적으로 분류한 후에 인식합니다. 크기, 색상, 모양 등 여러 계층의 특징을 식별하고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종합하죠. 이미지는 네오코그니트론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미 프랭클린협회의 영상자료를 캡처한 것입니다.
원본보기 아이콘네오코그니트론은 오늘날 컴퓨터 비전의 핵심 기술인 합성곱신경망(Convolutional Neural Network·CNN))의 원조가 됩니다. 전기공학과 신경과학을 연결한 후쿠시마의 작업은, 얼굴인식, 암 진단, 홍수 예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용 분야로도 이어지는 기반이 됐죠.
네오코그니트론은 당대에 큰 환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는 이른바 ‘인공지능의 겨울’이라 불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나마 대부분의 AI 연구자들은 규칙 기반 시스템과 논리적 추론에 초점을 맞춘 AI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죠. “신경망 연구는 실현 가능성이 없고 실용성이 없다”고 여겨지던 때였습니다. 논문 제목에 ‘신경망’이 들어가 있으면 자동 거절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논문을 발표해도 관심을 받지 못했죠.
후쿠시마의 날개를 꺾은 건, 무엇보다도 당대 하드웨어 기술 수준이었습니다. 네오코그니트론과 같은 대규모 신경망을 효율적으로 훈련하려면 상당한 컴퓨터 연산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계산 능력이 필요했는데, 그 시대에는 그 어느 쪽에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죠.
당시 최신 컴퓨터였던 인텔(Intel) 8086 프로세서는 고작 4.77~10㎒의 속도로 작동했고, 메모리는 수 킬로바이트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스마트폰 연산 성능에 비할 바 없이 느린 수준입니다. 복잡한 신경망 연산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며칠, 때로는 몇 주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의 연구는 시대를 너무 앞서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오코그니트론의 잠재력이 실제로 증명되고, 가치가 빛을 발한 건 그가 연구를 마친 한참 후의 일이죠.
후쿠시마의 사례는, 기술혁명이 단순히 개인의 천재성이나 노력만으론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진정한 기술 혁명을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입니다. 후쿠시마가 제시한 네오코그니트론이죠. 둘째는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하드웨어 기술입니다. 컴퓨팅 파워의 폭발적 증가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죠.
그럼에도 "나는 행운아"
1990년대 이후 IT 산업에서 뒤쳐졌던 일본은 최근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글로벌 빅테크의 AI연구 거점을 유치하며 AI시대의 새로운 강자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AI 테스트베드(실험장)으로 일본을 택했죠. 챗GPT(DALL E·3)로 미래의 일본을 가상으로 생성한 이미지.
원본보기 아이콘후쿠시마에게 배울 것은 AI만이 아닙니다. 후쿠시마는 자신의 연구가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서 좌절하거나 체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연구 수행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아’였다고 말합니다. 후쿠시마가 연구에 매진했던 1970년대, 일본은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과학기술에도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었죠. 그가 속해있던 연구기관은 NHK연구소였습니다. NHK라는 단어가 익숙하실 겁니다. 네, 맞습니다. 일본의 방송사죠. 방송사가 과학연구를 후원할 만큼 돈이 넘쳐나던 시기였던 거죠. 후쿠시마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NHK연구소에서 신경망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고 했죠.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흔들림 없는 신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는 우리에게 진정한 연구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AI 혁명의 혜택들은 후쿠시마와 같이,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선구적인 통찰이 당대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죠. 하지만 꺼지지 않는 열정은 결국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오늘날 AI 혁명의 숨은 공로자인 후쿠시마 구니히코, 그의 이름과 업적을 기억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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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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