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룸 넥스트 도어’는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 마사는 친구 잉그리드에게 자신이 죽는 순간 곁에 있어 줄 것을 부탁하며, 경치 좋은 산골의 안락한 집과 안락사를 위한 약 한 알을 준비한다. 그가 선택한 삶의 마무리는 자신이 원하는 순간과 장소에서 끝을 맞이하는 모습이었다. 항암 치료를 시도할 수 있는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사는 이미 자신이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나는 온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순간을 마지막으로 삼아야 할까’와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마사가 선택한 죽음은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접하는 죽음의 모습과는 다르다. 이는 노후의 충분한 경제적 여력과 큰 용기가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 이와 관련된 논의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책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는 생애 말기 돌봄 연구자와 호스피스 의사가 함께 쓴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존엄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과연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순간, 원하는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생애 말기 돌봄이 이뤄지는 주요 공간인 호스피스 병동을 오랜 시간 연구해왔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환자와 그 가족에게 신체적, 정서적, 심리적, 영적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한국에서는 말기 암, 만성 폐 질환, 간경화, 에이즈 등 일부 환자만이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제한적 현실에도 저자는 호스피스의 특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생애 말기 돌봄’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임종의 순간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대부분은 침대에 누워 미동 없이 천장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나 저자는 호스피스에서는 죽음을 하나의 단순한 순간이 아닌 또 다른 삶의 과정으로 본다고 말한다. 호스피스는 환자가 살아온 삶의 서사를 존중하며, 병원이 아닌 집에서 이어지는 삶의 연장선으로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저자는 우리의 삶이 각기 다르듯 생애 말기의 모습도 다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스피스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요양병원이나 종합병원과는 달리 환자들에게 단순한 치료를 넘어선 돌봄의 기능을 수행한다. 병원이 병을 치료하고 낫게 하는 데 목적을 둔다면, 호스피스는 증상을 완화하고 환자가 말기에도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중점을 둔다. 이 과정에서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보호자들에게도 생애 말기의 다양한 증상과 임종기 수용 과정을 설명하며 심리적 지지를 제공한다.
저자는 호스피스를 두고 ‘돌봄을 통해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는 곳’이라 정의한다. 말기에 직면한 환자들이 생애 끝까지 개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환자의 삶의 서사에 관심을 갖고 섬세하게 접근한다. 이러한 지원 속에서 환자들은 비로소 평온과 안정을 누릴 수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불편하고 편협한 인식과 마주할 시점이다. 안락사에 대한 윤리적 논쟁을 넘어, 죽음의 결정권에 대한 성숙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내 생애의 끝을 언제쯤으로 정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결국 우리는 누구나 늙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 | 송병기·김호성 지음 | 프시케의숲 | 408쪽 | 2만2000원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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