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일을 갖는게 노후대비
100세 인생설계 최우선 순위
돈·건강·외로움 3대불안 해소
70대 후반의 나이가 돼 보니 매일 매일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노후의 3대 불안 돈·건강·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수입을 얻는 일이든, 사회공헌활동이든, 취미활동이든 일을 갖는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 우연한 계기로 우리보다 20~30년 고령사회를 앞서가던 일본을 보면서 퇴직 후 일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게 행운이었던 것 같다.
그 첫 번째 계기는 1975년 회사생활 3년 차 주니어 시절의 일이다. 그때 운 좋게 일본도쿄증권거래소에 가서 연수받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일본 전체 인구 중에서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8%였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비율은 내년에 20%가 된다. 49년 전 일본의 노인 비율은 지금 우리나라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일본의 노인들은 체면을 버리고 일할 준비가 돼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두 가지 광경을 목격했다. 하나는 도쿄증권거래소에서 본 것이다. 그곳 지하에 주식이나 채권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그 창고를 견학하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60~70대로 되어 보이는 노인들 100명 정도가 앉아 주식을 세고 있었다. 전직 회사 간부도 있고, 공직자 출신도 있고 다들 한자리하던 사람들인데, 시간당 500엔 정도 받으면서 일을 한다고 했다.
또 하나는 그때 머무르고 있던 비즈니스호텔에서 본 광경이다. 오후 5시가 되니 젊은 직원들은 퇴근하고 할아버지들이 야간 당번으로 교대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례들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뭔가 일을 해야 하는구나. 일하려면 폼나고 권한 있는 일은 젊은 세대에게 양보하고 저렇게 허드렛일에 가까운 일도 해야 하는 거구나. 앞으로 오래 살 텐데 저런 준비를 해 두어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그때 그 장면들을 본 것이 후반 인생 설계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높은 자리, 연봉 많이 받는 일보다도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계기는 일본의 베이비붐세대(1947~1949년생)가 정년퇴직(당시 60세)을 몇 년 앞둔 시점인 2000년대 초의 일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베이비붐 세대를 타깃으로 후반 인생 설계 관련 서적 출판이 붐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 나온 책들을 구입해 읽어본 것이다. 책들의 내용을 요약하면 노후대비는 노후자금 몇억 원을 준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장수리스크, 건강리스크, 자녀리스크, 자산구조리스크, 인플레리스크 등에 종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100세 시대의 가장 확실한 노후대비는 평생 현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런 자료들을 읽은 게 계기가 되어 ‘평생 현역’을 후반 인생 설계의 최우선 순위에 두기로 했다.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더라도 거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때그때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 낮 동안은 자신만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세 번째 계기는 201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 출판되기 시작한 남편 퇴직 후의 부부 갈등에 관련된 서적들을 읽은 것이다. 당시 도쿄의 서점가에 가면 ‘은퇴 후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는 법’ ‘퇴직 부부 취급설명서’ ‘무서운 아내, 무용지물 남편 처방전’ ‘은퇴 남편 길들이기’와 같은 제목의 책들이 다수 진열돼 있었다. 왜 이런 책들이 그렇게 많이 나와 있었을까. 남편이 퇴직한 가정의 부부 갈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노후설계 전문가들은 퇴직을 앞둔 부부들에게 퇴직 후의 부부 화목을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조언하고 있었다. 특히 퇴직 후에도 낮 동안은 가능한 한 부부 각자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본의 사례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론을 통해서도 노후설계 강의 현장에서도 퇴직 후의 부부 갈등에 대한 고민을 너무 많이 듣기 때문이다. 퇴직 후의 부부 화목에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경제적인 문제나 퇴직자 자신의 보람 있는 삶을 위해서뿐 아니라 퇴직 후의 부부 화목을 위해서도 일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계기들을 통해 평생 현역의 꿈을 갖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체력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그 꿈을 키워가고 싶다.
강창희 행복100세자산관리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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