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현금인출기 지칭한 트럼프
韓정치권 국민 안심시킬 대책 절실
마지막까지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개표 결과 의외로 트럼프의 압승으로 끝났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후보의 승리 원인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도가 높았던 히스패닉·흑인·청년층의 유권자들이 트럼프 지지로 선택을 바꾸었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러한 표심 이동의 원인은 경제적인 이유에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저학력에 불법 이민자들과 일자리를 경쟁하며 인플레이션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계층들에게는 민주당 해리스 후보의 낙태 허용이나 저탄소 연료 사용과 같은 가치 중심 공약보다 불법 이민자 추방 등 자신들의 일자리를 보호해 주겠다는 트럼프 후보자의 공약이 훨씬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해 온 트럼프 당선자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미국을 치유할 것이다. 미국의 모든 문제를 고칠 것”을 선언했다. 첫째 과제는 국경 강화와 불법이민자 추방이다. 또한 법인세율을 21%에서 15%로 낮추어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관세를 보편적으로 10~20%, 중국 수입품에 대해서는 60%까지 인상하여 미국 기업들을 보호할 것을 공약했다.
물론 이러한 공약을 정책으로 실행하는 일은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상당한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며, 따라서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이민위원회(AIC) 보고서는 1300만 명의 불법이민자를 추방하는 데는 3,15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필요하며, GDP 4.2%~6.8%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수반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보고서는 관세 부과가 중국에 미치는 효과는 크지 않았지만, 오히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과 기업 투자 비용을 증대시키는 부작용이 심각하여 장기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저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공약은 미국 경제에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의 양면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에서 설립되는 ‘정부효율성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을 것으로 알려진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정부 지출 삭감으로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가 침체할 수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이민 규제와 관세 인상은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는 미국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MAGA’ 비전 추진은 단기적으로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상당한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미국을 효율적이고 강력한 혁신주도 국가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한편 유럽은 미국의 나토(NATO)와 파리 협약 탈퇴 가능성과 관세 인상 위협의 충격에 직면해 있다. 더구나 북한과 러시아는 전쟁 시 군사원조를 포함하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지만, 한국을 ‘현금 인출기’로 지칭한 바 있는 트럼프 당선자는 방위비 분담의 대폭 인상을 벼르고 있다.
이처럼 트럼프 당선으로 세계의 안보 질서와 경제 지판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국익을 지키기 위한 대책 수립은 고사하고 정권 유지조차 우려되는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 정부와 국회는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하며, 정권 방어 또는 정권 퇴진의 차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국가 안보와 국민이므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위기에 직면해 있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국가 역량을 보이는 것이 절실하다.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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