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지난 9일(현지시간) 공개한 아이폰16 시리즈를 딱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인공지능(AI)과 카메라다. 거시적 트렌드와 맞물린 AI는 충분한 조명을 받았는데, 카메라는 상대적으로 그에 못 미친 듯하다. 아이폰16에는 카메라 전용버튼이 추가됐다. 복잡한 키와 버튼을 최소화하고 화면 ‘터치’로 스마트폰 세상을 연 애플임을 고려하면 놀랄 만한 일이다.
눈에 띄는 점은 또 있다. 공식 홍보 영상에서 카메라를 강조할 때 촬영의 방식과 사진의 비율이 세로가 아니라 가로라는 점이다. 카메라 버튼 조작이 가로 사진 촬영에 더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에 셔터 버튼이 오른쪽 상단에 있는 것처럼, 아이폰16의 카메라 버튼도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세로의 시대를 열었던 아이폰이 이번엔 가로의 시대를 예고하는 것일까. 새로운 유행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숨은 의도 따윈 없이 그저 스쳐가는 찰나의 광고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생각이 멈춰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이폰이 세상에 실제로 남겨온 커다란 흔적들 때문이다.
한때 디스플레이에 전시되는 콘텐츠는 가로의 형식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TV, 모니터는 4:3, 2:1, 1.85:1, 16:9 등의 비율로 만들어졌다. 세로가 아닌 가로 형식인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한 가지를 꼽자면 인간의 눈이 수평적으로 넓은 시야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기를 만드는 사람들도,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그게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아이폰 혁명은 이를 뒤집었다고도 볼 수 있다. ‘모바일 네이티브(Mobile Native)’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들에게 사진은 세로가 기본이다. 그들이 주로 만지는 모바일의 화면이 세로이기 때문이다. 틱톡·릴스·유튜브 숏츠 등 모바일 네티이브들이 주로 쓰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비율은 스마트폰 형식에 최적화된 세로 9:16이다. 그들은 단지 주어진 기기 환경, 형식에 맞춰 폰카를 들었을 뿐이다. 가로가 지배하는 디지털 세상을 세로로 돌려세운 건, 구조적 환경의 영향이었다.
형식에는 힘이 있다. 형식 그 자체가 트렌드를 유도하고 내용을 창조하기도 한다. 오디오 콘텐츠 시장은 형식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스포티파이 등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형식은 음악 산업 전체를 바꿔놨다. 이전까지는 특정 테마나 주제에 맞춘 앨범형 음반 제작형태가 지배적이었으나, 스트리밍 시대가 되면서 단기 트렌드를 반영하는 싱글곡들이 대세를 이뤘다. 음악의 길이도 짧아졌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음악을 배경처럼 활용한다. 음악 자체보다는 음악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소비한다. 부담없이 듣고 흘릴 수 있는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 유행과 맥이 닿아있다. 스트리밍이라는 형식에 적응한 음원 산업은, LP·테이프·CD 시절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형식을 창조하고 형식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키는 타 산업계의 역동성을 지켜보다 보면 언론의 현재를 되돌아보게 된다. 신문이라는 플랫폼에 최적화된 기사를 모바일 화면에 그대로 욱여넣는 모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일부 선도적 매체가 뉴스레터·팟캐스트·인터랙티브 뉴스 등 형식 실험을 계속하곤 있으나 희소식은 드물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이 "뉴스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고 답한 설문의 결과가 더 아프게 다가온다.
김동표 콘텐츠편집2팀장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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