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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AI 존재 감추는 무모한 '원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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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고 꿈도 꾸는 엉터리 디지털 페르소나
AI 존재 감추는 이용자…관리자는 나 몰라라
인간 존엄성 해치는 중대한 도전…더 큰 상처로

영화 '슈퍼맨(1978)'에서 클라크 켄트(크리스토퍼 리브)는 죽은 친부 조 엘(말론 브란도)을 만난다. 이때 엘은 생전 모습을 투영한 디지털 트윈(가상공간에 실물과 똑같은 물체를 만들어 다양한 모의시험으로 검증해 보는 기술)이다. 양방향으로 대화하며 지구에 보낸 목적 등을 설명한다. 단 정신적 교감까진 형성하지 못한다.


[슬레이트]AI 존재 감추는 무모한 '원더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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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은 전문 지식과 경험을 시공을 초월해 나누는 유익한 매체다. 예컨대 성공한 기업가와 문학가, 프로그래머 등은 후대에 해당 분야 전문 지식과 고유한 경험, 스타일, 사고방식, 가치관 등을 전파할 수 있다. 지식과 경험을 전수해온 책과 논문이 실시간 대화형 디지털 휴먼으로 대체되는 셈이다.

영화 '원더랜드'에서 바이리(탕웨이)가 활용하는 목적은 다르다. 그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 딸 지아(여가원)에게 다가올 죽음을 숨기고 싶어 한다. 장기간 출장을 떠난다 거짓말하고, 영상통화에 디지털 트윈을 내세워 눈속임한다.


디지털 페르소나는 인간이 아니다. 실재하지 않는다. 화상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외형을 비롯한 모든 것도 의인화다. 인간처럼 생각하는 듯하나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결과를 산출한다. 바이리의 디지털 페르소나는 이런 범주를 벗어나 있다. 매사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잠이 들면 꿈도 꾼다. 다른 세계에 갇힌 인간이나 다름없다.


김태용 감독이 묘사한 인간과 인공지능(AI)의 수평적 공존은 일본 로봇공학자 마사히로 모리가 1970년 제시한 '불쾌한 골짜기'를 유발한다. 로봇의 모습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증가하던 호감도가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강한 거부감이 생기면서 골짜기처럼 뚝 떨어진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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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리의 디지털 페르소나는 디지털 트윈 세계인 원더랜드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인연을 만든다. 현실 세계에서 소통을 단절해도 생각하고 존재한다. 꿈에서 자신이 인간을 위한 기술 구현임을 깨달은 뒤도 다르지 않다. 딸과의 극적인 만남을 갈구하며 원더랜드 바깥으로 돌진한다. 온전히 모성애를 부각하려고 과학적 틀을 깨부순다.


알고 보면 기본 설정부터 무리수다. 바이리의 어머니(니나 파우)는 손녀에게 딸의 죽음을 계속 숨긴다. 관리자들은 알고도 개의치 않는다. 인간 존엄성 차원에서 AI 존재를 의도적으로 감추는 행위는 중대한 도전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겨진 유족과 후손에게 더 큰 상처도 줄 수 있다.


김명주 서울여대 교수는 저서 'AI는 양심이 없다'에서 "AI의 존재와 역할을 사전에 알리는 건 AI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는 첫 단추이자 수직적 공존 관계를 유지하는 출발점"이라고 역설했다.


"단지 AI의 존재뿐만 아니라 AI가 맡은 역할의 범위, 능력의 수준까지도 사전에 구체적으로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치 CCTV와 같은 영상 정보 기기를 공공장소에 설치해 운영하려면, 반드시 사전 고치 절차를 지켜야 하는 것과 동일하다. CCTV를 설치하는 목적과 장소, 촬영 범위와 시간, 관리 책임자 성명 및 연락처를 기재한 안내판을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인식하도록 게시할 것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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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유럽 등에선 고인의 흔적을 디지털 세상에서 지워주는 사회적 기업도 속속 생기고 있다. 디지털 트윈과 정반대되는 개념이다. 디지털 장의사를 자처하는 데드소셜이 대표적인 예. 장차 맞이할 죽음에 대비해 현실과 디지털 세계에서 마지막을 잘 매듭짓도록 도와준다. 사망하면 디지털 유산, 계정 등을 정리해 고인과 유족이 입을 피해를 최소화한다. 원더랜드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안전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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