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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기괴하지만 아름다운 '벨라'…전통적 페미니즘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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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가여운 것들'
성인 몸을 가진 아이 벨라, 세상 이치 알아가
불평등에 분노하는 인간미…편견·선입견 깨뜨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가여운 것들'에서 벨라(에마 스톤)는 성인의 몸을 가진 아이다. 천재 외과의 갓윈(윌렘 데포)이 기괴한 방식으로 부활시켰다. 만삭의 몸으로 다리에서 뛰어내린 그의 머리에 뱃속 태아의 뇌를 꺼내어 이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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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는 말과 글을 익히고 세상 이치를 알아간다. 성적 쾌락에도 관심을 보인다. 변호사 던컨(마크 러팔로)에게 이끌려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잠자리 열락(悅樂)을 탐닉한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부의 불평등을 목격하면서 동행은 끝이 난다. 여비가 바닥날 정도로 동정심을 베풀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벨라는 파리에서 매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여전히 새로운 경험에 목말라 있다. "내 상황을 설명하죠. 저는 섹스와 돈이 필요해요. 애인을 구해서 의지해도 되지만 많이 피곤할 것 같아서요. 하루에 20분만 일하고, 남은 시간에 세상이 어떤 곳이고 어떻게 발전하는지 배울게요. 저를 고용해 주세요. 퀴퀴한 냄새가 나는 당신의 매음굴에서 일할래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여성이라…. 멋지구나, 따라와."


다부진 선언은 침묵을 강요받아온 매춘 여성들이 1980년대부터 내온 목소리와 흡사하다.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영향으로 다양한 의견과 존재의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자 직접 매매춘 담론의 성격과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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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페미니스트들의 매매춘 이론이 사회적 오명이나 편견을 깨뜨리기보다 전통적인 남성 위주의 견해를 그대로 답습한다고 봤다. 매매춘 추방이나 폐지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학자들이 정치적 수사학을 동원해 관련 논의를 자신들의 권력 강화에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대두된 페미니스트 매춘 여성들은 "생계형 수단의 매춘이 뭐가 잘못인가?"라고 질문했다. 남성들은 사회적 편견 없이 성적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데 여성들은 왜 사회적 놀림과 적대감, 수치감 없이 같은 서비스를 판매할 수 없냐는 물음이었다. 도전적인 질문은 결과적으로 페미니스트 매춘 여성들이 은폐돼온 자신들의 역사를 발굴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물론 지금도 페미니스트 이론 대부분은 매춘 여성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기반으로 활용한다. 중심에는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의 전형적 사례라는 정치 이론 개념이 자리해 있다. 이에 대해 이성숙 영국여성사학 박사는 저서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에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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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위주의 성 문화와 태도를 반영하는 낡고 왜곡된 개념에 불과하다. 현재와 같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들에게 자율적인 삶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기보다 여러 형태의 강요된 삶을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춘은 여성들에게 강요된 삶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불합리한 결혼제도를 바람직한 결혼 형태로 바꾸기 위해 많은 페미니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듯이, 바람직하지 못한 매매춘 형태를 건전한 형태로 바꾸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벨라는 매음굴에 들어서자마자 기존 틀을 바꾸려고 한다. 남성 손님이 매춘 여성을 택하는 방식을 뒤집자고 제안한다. "기존 방식은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돼요. 그 새로운 방식도 영원할 수 없고요. (중략) 우리가 손님을 선택하자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어요."


포주(캐스린 헌터)는 일견 수긍하면서도 이상적 생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나중에 뒤엎더라도 가끔은 세상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고 다독인다. 벨라는 포주의 설득에 넘어가 뜻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벨라로 불리기 전의 삶을 돌아보며 더 큰 전복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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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실은 자유나 주권에 그치지 않는다. 선입견에서 해방되는 기쁨까지 누린다. 타인을 지배하거나 굴복시킬 자세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불평등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동정을 느끼고 부당한 것에 분노하는 인간미가 있었기에 행복한 결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편견을 걷어내고 현실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야말로 매매춘을 포함한 모든 사회 문제를 해결할 첫걸음인 셈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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