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분열의 시대, 제도적 개선 모색해야
대통령 권력 집중 완화하는 개헌 필요
대선 결선투표 공감, 총리 국회 추천제는 의문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공약한 대통령 4년 연임·중임제 등 개헌 구상이 새 정부에서 성사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른바 '87체제' 종식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정당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집권 후에 개헌 논의가 무산되기 일쑤였다. 38년 만의 개헌인 만큼 권력구조 개편뿐만 아니라 시대정신이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말로만 협치 외친 3년…갈등 상황은 그대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4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한 언론사 행사에 참석, 인사를 나누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국민의 이익과 국익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진보와 보수의 대한민국도, 영호남도 따로 없을 것이다."(2022년 3월10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달라."(2022년 3월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윤 전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는 20대 대선 투표에서 당락이 결정된 2022년 3월10일 각각 당선 수락연설과 낙선인사를 통해 통합과 화합을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와 20대 대선에서 벌어진 여야 간 대립은 뒤로 하고 힘을 합쳐 코로나19 극복과 경제·민생 위기를 넘기자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허니문은 오래 가지 못했다. 윤 전 대통령의 독주, 여당이던 국민의힘의 아집과 21~22대 총선에서 승리한 민주당 등 범야권의 오만이 강하게 충돌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와 탄핵소추안 발의다. 윤 전 대통령은 파면 전까지 야당이 주도한 법안에 25차례 거부권을 행사했고, 더불어민주당은 2023년 2월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을 시작으로 지난 1일 심우정 검찰총장까지 총 31차례 탄핵소추안을 발의로 맞섰다. 지난해 12월 야당의 사상 초유의 감액예산안을 강행에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정치적 극단 사태를 일으켰다.
21대 대선 기간에도 정치 진영의 비난 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 상대 당 후보에 대해 '내란 세력' '범죄자' '여성혐오자' 등 발언을 일삼으며 지지자들을 줄 세우고 있다. 국민의 정치 갈등 우려도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회갈등 요소 8개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으로 보수와 진보의 갈등(77.5%)이 꼽혔다. 2015년부터 10년 치를 놓고 봐도 2021년 빈곤층과 중상층 갈등을 제외하고는 국민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갈등 요소였다.
◆'절대 권력이 문제'…개헌 필요성 강화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분열된 정치권을 협치의 장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선거할 때만 협치, 통합을 외치고 새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에는 여야의 대치 전선이 공고해지는 현실은 사회, 경제, 외교 등 각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이에 관한 해법으로 개헌이 시급히 뒤따라야 한다는 견해가 정치권 안팎에서 분출하고 있다. 대통령 임기 연장을 막고 직선제를 되찾기 위해 마련된 1987년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 출연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나라 안팎으로 위기가 찾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국민은 정치통합과 민생 살리기를 우선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제왕적 대통령제와 권력 집중을 견제하고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양당 대결 정치는 독식형 선거구제에서 출발하는 만큼 선거구제를 개편하고 새 정부의 중기 과제로는 약자, 노동자, 청년 등을 대변할 수 있게 사회대개혁을 채택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후보별 같은 듯 다른 듯…전문가 "삼권분립 강화·권력구조 개편 필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5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에 나서자, 조국혁신당과 사회민주당, 진보당 의원들이 매국협상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퇴장하고 있다. 2025.4.24 김현민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대통령 4년 연임제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는 별도 의견이 없다고 밝혔다. 연임제는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면, 중임제는 당선된 후 한 번 쉬었다가 재당선 될 수 있다는 점이 차이다. 김문수 후보는 조기 대선의 경우 임기 3년으로 단축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결선투표제의 경우 김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후보 모두 찬성 입장을 내왔다. 결선투표제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가 없을 경우 다득표자 2명이 결선투표를 치르는 제도를 말한다. 이때 3·4위 후보와의 정책 공조가 자연스럽게 이뤄져 최종 당선자는 50% 넘는 지지를 얻어 민주적 정당성이 강화된다.
전문가들은 대통령 권한 분산에는 동의했지만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는 회의적이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한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며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한다는 식의 분권화가 아니라 삼권분립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입법권과 예산권은 국회에 다 주는 순수한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며 "모든 권력기관의 인사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은 계엄 사태 때문에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권력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도 "미국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8년짜리 제왕을 뽑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한다는 게 소위 이원집정부제인데 소용이 없다"며 "특정 정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임춘한 기자 ch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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