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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지옥 해방일지]⑩과거와 현재의 완벽한 조화… 런던 ‘킹스크로스’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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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세권 도시재생 사업 모범 사례
기존 건물 리모델링 통해 아파트·공원으로 탈바꿈

[통근지옥 해방일지]⑩과거와 현재의 완벽한 조화… 런던 ‘킹스크로스’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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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태민 기자] 영국 런던 중심부에 위치한 킹스크로스(King‘s Cross)역. 런던시를 관통하는 6개 노선이 교차하는 지하철역이자, 런던 북동부로 나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교통의 요충지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자주 등장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지기도 했다. 지난달 4일(현지시간) 방문한 킹스크로스역 안에 마련된 해리포터 기념가게와 포토존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여기에 지하로 연결된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고속철도를 타고 유럽 대륙으로도 향할 수 있어 일대에는 더욱 인파가 붐비는 모습이었다.


지하철 6개 노선과 런던 교외로 향하는 기차역이 한 곳에 모여있는 교통 중심지 킹스크로스역. 역세권 도지새생을 성공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사진=류태민 기자)

지하철 6개 노선과 런던 교외로 향하는 기차역이 한 곳에 모여있는 교통 중심지 킹스크로스역. 역세권 도지새생을 성공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사진=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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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킹스크로스역에서 나와 북쪽으로 걸으니 옛 건물과 새로 지은 높은 건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개발이 완료된 건물에는 구글, 메타 등 글로벌 기업이 둥지를 틀었고 인근에는 식당·의류 상점들도 줄지어 들어섰다. 런던 최고의 예술대학교가 들어선 덕에 거리는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리젠트 운하를 따라 만들어진 수변공원에는 밤낮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모여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예전의 빈민촌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쾌적하고 번화한 동네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곳에는 아직 한창 공사 중인 공사 현장도 눈에 띄었다.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재생 프로젝트답게 26년째 도시재생이 ‘현재 진행형’인 상태다.



리젠트 운하에 조성된 수변공간 모습. 일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여가를 즐기고 있다. (사진=류태민 기자)

리젠트 운하에 조성된 수변공간 모습. 일대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여가를 즐기고 있다. (사진=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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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홍등가, '런던 1번가'로 거듭나다

킹스크로스역은 산업혁명 시대인 1850년에 건립돼 영국 북부 광산과 공장지대에서 생산된 공산품을 실어 나르는 증기기관차들의 정류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요 물류 이송 수단이 기차에서 운하·대형 트럭으로 바뀌면서, 버려진 공간이 된 킹스크로스역 일대는 마약 거래가 판치고 홍등가가 성행하는 낙후지역으로 전락했다.


그러던 중 1994년 역세권 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며 킹스크로스역이 새로운 단장에 나서기 시작했다. 1996년 영국 정부는 유럽 대륙으로 연결되는 해저 초고속 기차 선로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킹스크로스역과 나란히 위치한 세인트 팬크러스 역을 출발역으로 선정했다. 이후 토지 소유자인 런던&콘티넨털 철도(LCR)와 개발사 아젠트(Argent)는 킹스크로스 주변 지역의 토지와 개발권을 양도받았다. 킹스크로스역을 시작으로 뒤편 리젠트 운하까지 67에이커(약 27만㎡) 규모의 토지와 낙후된 건물들이었다.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백지 기획서'

특히 킹스크로스 도시재생사업은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기 위해 353차례 회의를 열고 시민 3만여명이 참여한 끝에 106개 합의사항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개발사, 지역 커뮤니티가 한데 모여 치열하게 논의하고 합의한 결과다. 사업에 관여했던 피터 비숍 런던대 바틀릿 건축대학 교수는 "도시재생 성공의 열쇠는 이해당사자 간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한 합의"라며 "사업 대상지뿐만 아니라 인접한 주변 지역과의 연계성도 충분히 고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2001년 실시한 도시재생사업 공모에서 부동산 전문 개발사 아젠트(Argent)는 킹스크로스 도시재생에 관련해 단 한 페이지짜리 제안서만 제출하고도 사업자로 선정됐다. 아젠트는 "어느 누구도 장기간 진행되는 복잡성 높은 사업에 대해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따라서 우리는 화려한 미사여구가 담긴 계획서 대신 모든 이해관계자가 사업기획에 합의할 수 있도록 정치적 프로세스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그 원칙과 과정을 제시한다"라고 설명했다. 주민들과 소통을 통해 협업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것이다.


이후 6년 동안 공청회와 워크숍, 길거리 미팅, 이벤트 등을 통해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쳤다. 그 결과 전체 재생 지역의 40%를 공공 공간으로 구성하고 2000가구 주택 건설, 전체 주택의 42%는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50개의 오피스 건물, 20개의 문화·산업유산 보존 건물, 20개의 인도와 차도, 10개의 공공 광장과 공원 등이 공청회를 통해 사업에 반영됐다. 또한 마스터플랜 중 20%는 수립하지 않고 남겨둬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상황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높이기도 했다.





과거 가스저장소로 사용됐던 '가스홀더 넘버8' 건축물. 현재는 리모델링을 통해 고급 아파트와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사진=류태민 기자)

과거 가스저장소로 사용됐던 '가스홀더 넘버8' 건축물. 현재는 리모델링을 통해 고급 아파트와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사진=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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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아파트가 된 가스저장소, 최고 예술대학교로 거듭난 물품창고

킹스크로스는 ‘신구의 조화’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2008년부터 순차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기존의 낡은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역사적 의미가 담긴 건물들은 보존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운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다.


킹스크로스역사 뒤편에 위치한 ‘가스홀더 넘버 8’이 대표적인 사례다. 가스홀더 넘버 8은 1850년대에 주변 지역에 가스를 공급하는 대규모 가스저장고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가스공급 방식이 바뀌면서 쓸모없는 시설물로 전락했다가 도시재생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았다. 주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와 다목적 공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1852년 물품 상·하차 장으로 지어진 ‘그래너리 빌딩’도 그중 하나다. 세월이 흐르며 크게 낙후됐던 이 건물은 보존건물로 지정된 이후 개조와 보수를 통해 건물을 재탄생 시켰다. 이후 영국 최고 예술대학인 런던예술대학교(UAL) 센트럴 세인트 마틴 캠퍼스가 이주해오면서 도시 일대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킹스크로스 사업 과정에서는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이 잘 맞아떨어졌다. 민간시행자인 아젠트는 지방 정부와 협상, 마스터플랜 수립, 기업 유치 등 실질적 사업을 담당했다. 지방 정부는 단계적 개발에 필요한 건물과 주택공급 시기, 건축물 위치 변경 등 세부적인 사업 내용에 관해서는 별도의 인허가 절차 없이도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러면서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 특정 건축물들을 보존하거나, 충분한 공적인 공간 확보를 위한 작업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원칙을 고수했다. 매튜 카모나(Matthew Carmona) 런던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기존 건축물들과 새로운 건물들이 조화를 이룰 때 더욱 크나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라며 "개발 이후 분양할 때도 역사적 특성을 지닌 지역이 더 인기가 높다 보니 민간 시행사 입장에서도 보존할 유인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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