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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사람]'2만원 짜리가 만원'…원래가격이 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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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링 효과'로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는 더 많은 물건을 사게 됩니다. [사진 작업=게티이미지/이진경 디자이너]

'앵커링 효과'로 사람들은 필요하지 않는 더 많은 물건을 사게 됩니다. [사진 작업=게티이미지/이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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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할인'이라는 안내 문구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춥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할인 행사를 할 때는 보통 '30% 할인', '반값 판매' 등의 문구와 원래 판매되던 가격도 함께 표시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같은 제품이라도 처음부터 1만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는 것보다 2만원에 X표를 치고, 1만원이라고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면 소비자들은 '엄청 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제품의 가격이 원래 1만원일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지요.

이런 마케팅 전략을 '앵커링 효과'라고 합니다. 앵커링 효과의 '앵커'는 배가 떠내려 가지 않게 고정해주는 'Anchor(닻)'를 말합니다. 닻을 내리면 배가 멀리 떠내려 가지 않고 밧줄의 길이만큼 맴돌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들도 머릿 속에 특정 기준이 세워지면 판단하는 범위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정박효과', '닻 내림 효과'라고도 합니다.


일상의 대화 속에서 내가 잘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여럿이 이야기할 때 누군가 먼저 기준점을 말하면, 그 기준점에서 멀리 떨어진 개념이나 값을 제시하기는 어려워집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할인 행사를 하는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먼저 원래 가격을 제시해두면, 그 가격이 기준점(닻)이 되는 심리를 공략하는 것입니다.


소비자가 2만원 짜리 옷을 할인받아 1만원에 샀다면 1만원 만큼의 이익을 봤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이지요. 그러나 할인된 가격이 원래의 적정가였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익이 아닌 것입니다.

심리학자이면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데니얼 카너먼은 앵커링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독특한 실험을 진행합니다.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를 모르는 사람들을 실험자로 참여시켜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A그룹에는 "에베레스트산이 600m보다 높나요? 낮나요? 몇 m정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했고, B그룹에는 "에베레스트산이 1만4000m보다 높나요? 낮나요? 몇 m정도 될까요?"라고 질문했습니다.


실험자들은 어떻게 답변했을까요? A그룹은 평균 2400m 정도로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를 추정한 반면, B그룹은 평균 1만3000m 정도될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A그룹은 600m가 기준점(닻)이 됐고, B그룹은 1만4000m가 기준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앵커링 효과는 제품을 구입할 때 기준이 되는 가격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특정한 조건을 제시할 때 활용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품을 찾으시나요?"라는 질문보다 "A제품과 B제품 중 어떤 것으로 구매하시겠어요?"라는 점원의 질문이 구매를 더 부추길 수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소비자가 제품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게 한다면, 후자의 경우는 A나 B제품 중 둘 중 하나를 고르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지요.


일상에서는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 "뭐 먹을까?"라고 묻는 것보다 "짜장, 짬뽕 중 뭐 먹을래?"라고 묻는 것이 상대방이 내 질문의 기준점, 즉 내 사고의 닻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앵커링 효과가 나타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실제 마트나 백화점에서 원래 가격이 1만원인 제품을 2만원 정가를 붙여서 50% 할인해 1만원에 팔지는 않겠지요? 이런 경우는 마케팅이 아닌 '사기'에 해당합니다. 다만, 원래 가격이 2만원에 못미칠 수는 있을 겁니다. 이처럼 앵커링 효과는 소비자를 유혹하는, 과소비를 조장하는 마케팅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또는 동네 편의점에서 '1+1', '2+1'의 상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하는 것은 아닌지요? 할인 행사를 하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간단하게 유혹하기도 하고, 그 유혹에 더 쉽게 넘어가는 것 같지 않은가요? 업체의 앵커링 효과를 간파하고 꼭 필요한 물건인지를 먼저 고민한 뒤에 소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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