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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기르는 '수갑 찬 소년들'…동물에게 배우는 사랑과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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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갑 찬 소년 품어줄 사회는 없나]<2>청소년 범죄 '엄벌화 정책' 실패한 일본

'개가 가르쳐 주었다' 저자 오쓰카 아쓰코씨 인터뷰
사람을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던 료(가명)는 지마크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수료식에서 북받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소년원을 나오기 전 료는 "앞으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사진=오쓰카 아쓰코 제공)

사람을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던 료(가명)는 지마크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수료식에서 북받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소년원을 나오기 전 료는 "앞으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사진=오쓰카 아쓰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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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일본)=송승윤 기자] 료(가명)는 사람을 전혀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소년이었다. 새아버지에게 늘 학대 당했고 학교에도 정을 붙이지 못했다. 자연스레 초등학교 때부터 싸움을 하거나 동급생을 폭행하는 문제를 일으켰다. 자신이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 료가 선택한 곳은 거리였다. 나이를 속이고 밤일을 하느라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다. 방황하던 료는 크고 작은 사고를 치면서 소년원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재범을 저지르고 두 번째로 들어온 곳이 야치마타 소년원이다.


소년원 안에서도 료는 늘 무표정이었다. 전문가나 교사 면담도 거부하고 스스로를 어둠속에 가뒀다. 그랬던 료가 사람에 대한 신뢰를 되찾은 것은 소년원에 입소한 지 3개월이 지나서였다.

료가 19살을 맞던 2014년, 야치마타 소년원에선 동물 매개 교정 프로그램 지마크(G.MACㆍGive me a chance)가 시작됐다. 료는 이 프로그램 참가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프로그램 과정이 절반쯤 끝나갈 즈음 인터뷰에서 료는 "사람은 절대 믿지 못할 존재이며 믿고 싶지도 않다"고 했었다.


그러나 개를 돌볼 때만큼은 료의 눈빛이 반짝였다. 프로그램 후반부로 갈수록 빛은 얼굴 전체로 번졌다. 개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며 나중에는 아예 개를 보호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프로그램 수료식 날 료는 인사말 도중 말문이 막히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 모습을 본 프로그램 관계자들의 눈시울까지 붉어지면서 소년원 전체는 눈물바다가 됐다.


늘 무표정으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던 료는 웃음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눈물까지 흘릴 줄 알게 됐다. 어느 누구도 가르치지 못한 것을 한 마리 개가 말없이 전해준 것이다. 다음해 소년원에서 나온 료는 취업에 성공해 지금은 마케팅 관련 회사를 차리고 자신의 일을 한다. 료의 회사는 소년원이나 형무소에서 출소한 이들을 채용한다. 소년원을 나오기 전 료는 "앞으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한 바람이 실현된 것이다.

'개가 가르쳐주었다' '개와 소년의 재출발'의 저자이자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인 오쓰카 아쓰코씨.(사진=오치아이 유리코 작가 제공)

'개가 가르쳐주었다' '개와 소년의 재출발'의 저자이자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인 오쓰카 아쓰코씨.(사진=오치아이 유리코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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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의 이야기는 일본 프리랜서 기자이자 작가인 오쓰카 아쓰코씨가 지난해 9월 출간한 'Give Me a Chance-개와 소년의 재출발'이라는 책 속에 있다. 책에는 지난 5년간 야치마타 소년원이 동물 매개 교정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와 진행 과정이 상세히 정리돼 있다. 오쓰카씨는 프로그램의 기획과 진행 전반을 맡아왔다.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 기치조지역 인근 레스토랑에서 만난 오쓰카씨는 "개는 사람과 달리 상대를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이 받는 사랑을 그대로 돌려준다"며 "이런 개의 특성을 통해 재소자들이 새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동물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일본에서 처음 동물 매개 교정 프로그램을 도입한 곳은 일본 시마네현의 아사히 사회복귀촉진센터였다. 이곳은 2008년 재소자가 안내견을 훈련해 시각장애인들에게 분양하는 프로그램을 일본 최초로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도 오쓰카씨가 주도적으로 기획했다. 이곳의 프로그램 도입 과정과 에피소드 역시 오롯이 책에 기록됐다. 한국에선 2016년 '개가 가르쳐주었다(돌베개출판사)'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일본 시마네현에 있는 아사히 사회복귀촉진센터에서 재소자들이 안내견을 훈련하는 모습. 재소자들은 이곳에서 10개월간 안내견을 돌보고 훈련하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다.(사진=오쓰카 아쓰코 제공)

일본 시마네현에 있는 아사히 사회복귀촉진센터에서 재소자들이 안내견을 훈련하는 모습. 재소자들은 이곳에서 10개월간 안내견을 돌보고 훈련하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다.(사진=오쓰카 아쓰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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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이용한 교정 프로그램을 일본에 소개하게 된 계기는?

▲미국이나 호주ㆍ캐나다 등 외국에선 재소자들이 개를 키우거나 훈련시키는 '프리즌 도그(prison dogs)'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 미국에는 400개 정도의 프리즌 도그 프로그램이 있으며 나는 1996년 워싱턴의 한 여자 형무소에서 이를 처음 접했다. 기사를 쓰기 위해 딱 한 번 방문해보려고 했으나 그 안에서 여성 수감자들이 개를 소중하게 키우면서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빠져들게 됐다. 이후 책으로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3년간 취재 과정을 거쳐 여러 권의 책을 내고 일본에 프리즌 도그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데도 관여하게 됐다.


-프로그램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교정 프로그램인 만큼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재소자들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신기하게도 개에게는 마음을 터놓곤 한다. 마음의 문이 열리고 사람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재범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아울러 잘 훈련받은 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장점도 있다. 예컨대 안내견 한 마리를 배출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때문에 안내견 수는 항상 부족하다. 야치마타 소년원의 경우 주인에게 버림받은 유기견이 새 가정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사람과 개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다.


-재소자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프로그램 운영에 함께 참여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아사히 센터와 야치마타 소년원에는 '서포트 패밀리(support family)' '세컨드 오너(second owner)'라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훈련받는 개들이 평일에는 시설 안에 있다가 주말에는 자원봉사자들의 가정에 보내지는 것이다. 함께 개를 키우는 셈이다. 예를 들어 소년원의 소년들이 개를 보낼 때 이번 주엔 어느 단계까지 훈련했는지를 편지에 적어 보내면 봉사자들은 이를 참고해 나머지 훈련을 하고, 다시 평일에 개를 돌려보내면서 주말에는 어떤 훈련을 했는지 적어 답장하는 식이다. 소년들은 바깥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사회에서 소외당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 같은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하는 키포인트다.

지마크 프로그램의 기획자 오쓰카 아쓰코(大塚敦子)씨는 "개는 사람과 달리 상대를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며 "재소자들이 새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동물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사진=오쓰카 아쓰코 제공)

지마크 프로그램의 기획자 오쓰카 아쓰코(大塚敦子)씨는 "개는 사람과 달리 상대를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며 "재소자들이 새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동물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했다.(사진=오쓰카 아쓰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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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 입장에선 프로그램이 끝난 후 소중하게 기르던 개를 누군가에게 보내야 하는 셈인데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는 없나.

▲처음부터 분양을 전제로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대부분 애완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개와 작별할 때는 정말 많이 운다. 지난해에는 키우던 개를 보낸 이후 잠을 못 자게 된 소년도 있었는데 자신이 마지막까지 해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결국 극복했다. 개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과 안도감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오쓰카씨는 동물 매개 교정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한국에서도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 같아 기쁘다"며 "여러 곳의 사례를 참조해 공부하고 프로그램을 시도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일본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한국은 새로운 도전에 매우 관대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나라로 알고 있다"며 "사람과 동물을 동시에 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꼭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송승윤 기자 kaav@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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