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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무대를 뚫고 나온 배우, 무대가 된 객석…편견을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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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무대 전경.(사진=쇼노트 제공)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무대 전경.(사진=쇼노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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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종횡무진 무대를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동선 좇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오른편에서 문득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동 중인 배우겠거니 하며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순간 뒤에서 이쪽을 향하는 몇몇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의 한 남성 조연배우가 1m도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수줍게 눈을 마주치자 그때서야 그는 윙크한 뒤 사라졌다.


160분간 이어지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공연 중간중간 배우와 시선을 마주칠 기회가 더러 있다. 옆 자리가 비었다면 당황하지 마시라. 가끔 배우들이 와 앉기도 할테니. 공연장에서는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19세기 유럽풍으로 잘 꾸며진 서울의 어느 클럽에서 친구들과 파티하며 노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레이트 코멧’은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소설 ‘전쟁과 평화’ 2권 5부의 70쪽 분량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 직전 모스크바가 배경이다. 부유한 귀족 피에르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나타샤, 퇴폐미 넘치는 군인 아나톨 간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극을 진행하는 ‘성스루(sung-through)’ 형식이다. 2012년 미국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선보였다. 라이선스를 가져온 한국에서는 올해가 초연이다.


‘그레이트 코멧’은 무대구성부터 다른 뮤지컬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공연장 중앙에는 혜성(comet) 궤도를 상징하는 듯한 둥그런 도넛 모양의 무대가 자리잡고 있다. 동일한 형태의 나머지 무대 6개는 중앙을 360도 둘러싸고 있다. 중앙 무대 양옆에 오케스트라가 있다. 나머지 공간엔 ‘코멧석’이 마련돼 있다. 코멧석이란 치열한 예매 경쟁을 뚫어야 앉을 수 있는 무대참여형 객석이다. 커튼이 쳐진 네모난 무대를 갖춘 전형적인 뮤지컬 모습은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 나타샤 역을 맡은 정은지.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 나타샤 역을 맡은 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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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극 처음부터 끝까지 쉼없이 이어지다 보니 넘버 수는 27곡에 이른다. 팝·일렉트로닉·클래식·록·힙합 등 다채로운 장르로 구성돼 지루할 틈이 없다. 주연 배우들이 연기만 하는 건 아니다. 스포트라이트로부터 벗어난 장면에서는 앙상블의 일원으로 아코디언·피아노를 연주하거나 북을 치며 극에 흥까지 더한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작품이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었다"며 "모든 분량을 소화해준 액터 뮤지션과 뮤지션 액터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전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2막 초반부 아나톨(고은성)이 나타샤(정은지)와 사랑의 도주를 위해 절친 돌로코프(최호중), 마부 발라가(김대호)와 공모하는 신이다. 넘버 ‘Preparation’, ‘Balaga’, ‘The abduction’이 약 15분 동안 이어지는 가운데 10여명의 주·조연 배우와 20여명의 앙상블은 공연장 전체를 누빈다. 대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계단을 빠르게 오르는 발소리와 가쁘게 몰아쉬는 숨소리, 흠뻑 젖은 땀에서 배우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 피에르 역을 맡은 홍광호.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에서 피에르 역을 맡은 홍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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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있다. 성스루 특성상 노랫말로 스토리를 파악할 수밖에 없는데 홍광호(피에르)처럼 성량과 발성이 뛰어난 일부 배우만 제외하면 가사가 음악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사건이 전개되고 있는지 의아한 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의미를 최대한 함축해 전달하기 위함인지 가사에 사자성어가 다수 사용된 것도 극의 배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공연 후기에서도 이런 평가가 많았다. 대략적인 줄거리와 인물 관계도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관람하면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보기 힘든 파격과 혁신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레이트 코멧’에는 충분한 매력이 있다. 초연인데도 이정도 에너지와 폭발력을 담았다면 이후가 더 기대되는 작품이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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