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연금 적립금 752조 시대
‘연금=원금보장’ 인식은 위험
투자상품 통해 수익률 관리해야
우리나라의 사적연금 적립액은 2023년 말 기준으로 752조 원이다. 이 중 퇴직연금 적립액은 절반이 넘는 382.4조 원에 달한다. 인구 구조상 이 금액은 상당 기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베이비 붐 세대(1955~74년생)가 계속 퇴직 대열에 들어서면서 퇴직연금 규모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퇴직연금 적립액은 지난 5년 새 2배나 증가했다.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적립액의 증가는 우리에게 두 가지 중요한 과제를 안겨 준다. 첫째는 수익률이다. 만일 지금 쌓인 사적연금의 수익률을 1%만 더 올린다면, 전체적으로 7.52조원이나 늘어나게 된다. 만일 2%를 올린다면? 아니 3%, 4%를 더 상승시킬 수 있다면, 상황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복지 문제를 정부 차원의 지원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복지는 우리보다 20여년 앞서 고령화를 겪은 일본에서 보여준 것처럼 절대 공짜가 아니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 자구 노력을 많이 할수록 국가의 부담은 줄어든다. 게다가 국민의 노후 안전판인 국민연금은 언젠가는 재원이 고갈되게 된다. 당연히 부족 자금은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그리고 연금의 지속성을 위해 더 내고, 덜 받고, 나중에 받는 방식으로 개혁도 이뤄져야 한다. 이런 국가 차원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 중 하나가 바로 사적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미국, 호주, 영국 등 연금 선진국에서 예금과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아닌 투자 상품을 통해 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리려 노력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우리의 현실을 보자. 382.4조 원에 달하는 퇴직연금 적립액 중 87.2%인 333.3조 원이 원리금 보장형이다. 90% 가까이 안정성이라는 미명 하에 원리금 보장형에 들어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5년 및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이 각각 2.35%, 2.07%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2023년은 수익률이 5.26%로 올라섰지만, 이는 운용을 잘했다기보다는 금리 인상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절대 물가상승률을 따라갈 수 없다. 연금은 미래의 생활비이므로 물가상승률을 헤지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채권이나 예금이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헤지한 경우는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사적 연금은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연금=원금 보장’이라는 미신이 여전히 창궐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내 연금을 갉아 먹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한국 사회는 연금의 수익률을 올리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적 연금 수익률이 올라가면, 단순하게는 개인들의 노후 자금이 증가하는 것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노인 부양 부담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개인 투자자들도 투자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 하고, 시류에 편승에 핫한 테마를 쫓기보다는 글로벌 분산투자를 해 나가야 한다. 지역도 한 지역에만 쏠리지 말고 분산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회사들은 연금 수탁자의 청지기 정신을 가지고 고객의 연금 자산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보 제공과 서비스 그리고 교육을 해야 한다.
이제 한국 사회의 고령화는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 2024년 말로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앞으로 펼쳐질 인구 변화의 풍경은 고용한 호숫가가 아니라 대형 폭포와 같은 흐름으로 전변할 것이다. 절대 과거의 눈으로 미래를 봐서는 안 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은 마지막 모래 한 알이다. 이제 한국의 인구구조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저성장·고령화의 축소사회에 맞게 사회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그중 연금 수익률 제고는 더 강조할 필요 없는 새로운 시대의 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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