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외 입양인은 마흔 살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홀로 고시원에서 지내다 지난해 숨졌다. 11년 전 이맘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는 생전 단독주택 반지하에서 살았다.
주거 환경은 삶의 질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 기택(송강호)과 그의 가족이 반지하에 사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비현실적이라고 얘기한다. 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고 궁상맞게 사는 건 그럴듯하게 묘사했으나 ‘찐흙수저’ 집안이라면 가족끼리 저렇게 화목하게 지내는 경우도 별로 없어서다. 사는 곳이나 여건이 개인의 인생을 오롯이 결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꽤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우리 헌법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 등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제35조 3항)’면서 주거권을 보장한다. 다소 두루뭉술한 감이 있고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의문이 드는 문구다. 자본의 이익 추구를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거주 환경을 달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돈이 없다고 해서 인간적인 거주 여건을 보장받지 못한 이가 적지 않은 현실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국가가 직접 챙겨주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지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해 오는 6월 시행하는 주거기본법 개정안은 이런 지향점을 소극적으로나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유도주거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유도주거기준은 일종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최저주거기준보다 한 단계 높은 개념으로 인간다운 삶,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정부는 후년까지 이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은 주택·주거 정책과 관련한 최상위법이다. 그럼에도 유도주거기준 조항은 의무가 아닌 장관 재량에 따른 조항 정도에 그쳤다. 주거기본법 제정 당시 국회나 국책연구기관 등 주거정책 전문가 집단에서도 해외 사례와 국내 여건 등을 감안해 강화한 유도주거기준의 초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 법령에 반영되지 못했다. 시장에서는 꾸준히 유명무실한 기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10년 넘게 제자리인 최저주거기준도 개선해야 한다. 1인 가구가 느는 등 사회 전반의 가구 특성이 바뀌고 있는 것이나, 소득 수준이나 생활 환경이 변하는 점을 반영해야 한다. 최저주거기준은 가족 수에 따른 최소한의 주거 면적을 비롯해 방의 개수, 부엌·화장실 여부, 나아가 구조강도·채광·소음 같은 요인도 규정한다. 앞으로는 5년마다 타당성 여부를 따진다고 하니 변화한 시대상을 반영할지 지켜볼 일이다.
집이 아닌 곳에 사는 이를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 고시원·고시텔, 숙박업소, 비닐하우스 같은 주택 이외 거처에 사는 가구는 44만가구(2022년 기준)로 5년 전보다 7만가구 이상 늘었다.
관건은 현실에서 실효성을 갖기 위한 제도적 장치일 것이다. 법 조항이 이상적이어도 당근이나 채찍이 없으면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렵다. 다만 재원이 충분치 않은 데다, 벌칙 규정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또 국회 등 주변에서 부추기는 모양새여서 능동적으로 나서기 힘들 수도 있다. 그래도 명확한 지향점을 제시해야 해야 시장이 변한다. 정책 결정권자가 살뜰하게 챙겨보길 기대해 본다.
건설부동산부 최대열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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