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친다는 것의 엄중함과 부질없음 사이에서
놀랍도록 사진을 정확하게 찍는 아이에게 '넌 사진에 소질이 있으니 계속 사진을 찍어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고민에 빠졌다. 여고생 영수(가명)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국제 청소년 사진교실에 참가한 한국 학생 중 한 명이었고 나는 사진을 가르치고 놀아주는 강사였다.
사진이 안정되고 빈틈이 없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야 할 경지는 아니지만, 다음으로 가는 요긴한 징검다리일 수는 있다. 사진은 이미 보여주기나 기록의 역할과 별개로 표현이나 예술의 영역에서 훨씬 자유롭고 변화무쌍한 세계로서 펼쳐지고 있다. 다만 그 아이의 시각적 표현 능력으로 세상을 직시하고 반듯하게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이 천재적이라 할만했다.
괜한 칭찬으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경직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까?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사물을 대하지는 않을까? 며칠을 고민했다. ‘미래의 문맹은 글이 아니라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마지막 날, 해변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용기를 내서 그 아이를 불렀다.
"넌 느낄지 모르겠지만, 네겐 남다른 안목이 있어. 안목이란 네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자세가 드러난다는 거야. 공부하고 대학 가느라 바쁘겠지만 사진을 계속 찍어봐. 카메라를 들고 네가 뭐든 찍고 표현하고 내보이는 일을 계속하면 좋겠어. 그건 네가 하나의 외국어를 잘하는 거에 못지않은 장점이 있을 거야." 이런 말들을 흘렸다가 주섬주섬 담았다가 한 것 같다. 중간중간 "예"하는 수줍고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말을 맺지 못하고 있는데 저 뒤쪽에서 "영수야! 우리 사진 찍자"는 친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영수는 "그래~" 하고는 간다는 말도 남기지 않고 해변으로 달려갔다.
아이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고민스러운 일이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뛰어가는 게 차라리 편했다. 카메라라는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사용해서 사진을 찍어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기성세대의 관념을 가르치려 드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사진이라는 매체의 존재 이유에서부터 소비 방식까지 완전히 바뀌어버렸잖은가.
갑자기 불어 닥친 모래바람을 피해 고개를 돌려 보니 바닷가 쪽에서 영수는 친구들과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고개를 한쪽으로 갸우뚱하며 눈을 찡긋 감고 양쪽 볼 옆에 두 주먹을 갖다 댔다. 고양이 흉내를 내고 있었다. 사진에도 대세는 고양이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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