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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 손흥민의 시대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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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컬처] 손흥민의 시대를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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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이번 시즌 프리미어 리그의 득점왕이 되었다. 한국인으로서 유럽에서 경쟁하는 일은 간단치 않았을 거라고, 아니 그런 말로는 부족하고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몸도 마음도 고되었겠다고 그저 짐작할 뿐이다.


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그런 성과를 냈다는 사실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이 있다. 그날의 토트넘은 손흥민에게 골을 넣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팀 같았다. 한 시즌의 공격 포인트의 개수와 그에 따른 평점으로 주급이 움직이는 프로의 세계에서 과연 가능한 일인가. 많은 선수들이 동료에게 완벽한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잘 패스하지 않는다. 너에게 어시스트를 하느니 안 들어가도 내가 차고 만다, 하는 마음인 듯하다. 그러나 리버풀의 살라와의 득점왕 경쟁이 달린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케인도, 클루셉스키도, 모우라도, 모두가 손흥민 한 사람을 위해서 움직였다. 공을 잡으면 손흥민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았고 그가 골을 넣을 때까지 몇 번이고 패스해 주었다.

특히 클루셉스키에게는 리그 첫 헤트트릭을 달성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골키퍼를 제쳤으니까 이제 빈 골대에 공만 차 넣으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는 대신 손흥민을 찾았고 골대로 쇄도하는 그를 발견하고 패스했다. 이 장면은 내가 그간 본 어떤 멋진 골 장면보다도 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 보는 사람이 그러했는데, 경기장의 선수들은 어떠했을까. 익숙지 않은 발에 맞은 공은 곧 수비수가 걷어냈지만 그것으로 그 경기장의 마음이 충분히 읽혔다. 어쩌면 클루셉스키는 빚을 갚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데뷔골을 도운 것은 손흥민이었다. 자신이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왔으나 굳이 그에게 패스해서 첫골을 넣게 만들었다. 그건 임대 선수로 온 그에게 보내는 환영인사가 아니었을까. 그 이후 클루셉스키는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선수가 됐다.


모우라가 후반에 교체 선수로 들어왔을 때, 나는 거의 포기하고 말았다. ‘아, 저 탐욕에 가득찬 모우라가 들어왔으니 오늘 손흥민의 득점은 없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모우라는 손흥민에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그는 몇 분만에 손흥민의 첫 번째 골을 돕고 두 번째 골에도 관여한다. 저게 내가 알던, 해맑게 천방지축 자기 자신만을 위해 뛰어다니던 그 모우라가 맞나 싶은 것이었다.


손흥민의 득점왕은 ‘네가 잘되면 좋겠어’라는 마음으로 90분 동안 함께 뛴 동료들 덕분에 가능했던 게 분명하다. 손흥민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갔을 때는 토트넘의 모든 선수들이 그에게 달려와 안겼다. 팀의 승리와 자신의 평점만을 위해서 뛰는 듯한 그들을 그렇게 만든 그는 대체 무슨 일을 한 것인가. 같이 득점왕 경쟁을 하던 살라를 대하는 리버풀의 선수들에게서는 그런 마음을 읽어내기 어려웠다.

손흥민은 축구를 잘했을 뿐 아니라 경기장 안팎에서 아름다운 태도와 선을 보이며 뛰어왔다. 그래서 그의 잘됨을 함께 경기한 팀원들부터 모두가 바란 게 아닐까. 그리고 나도, 그 새벽에 응원한 당신도.


단순히 축구를, 무엇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의 잘됨을 응원하게 되지는 않는다. 손흥민은 모두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 그가 잘되면 나도 잘될 것이란 확신을 주는 사람이다. 득점왕이라는 놀라운 사실보다도, 그의 이타적인 모습과 그에 감화된 그의 동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렇게 쌓아올린 그의 시대를 응원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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