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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욕망은 왜 멈추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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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욕망은 왜 멈추지 않는가
식욕·수면욕·성욕·재물욕·명예욕…오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

이용범 소설가

이용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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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를 불러 소원을 물었다. 장수는 조그만 땅을 주시면 작은 집을 짓고 싶다고 대답했다. 왕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 네가 뛰어간 만큼 땅을 주겠다.” 장수는 궁궐을 나오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자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나왔다. 그는 안간힘을 다해 지팡이를 앞으로 내던지며 외쳤다. “저기까지 내 땅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숨을 거두었다. 그 소식을 들은 왕은 쓰게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쯧쯧, 결국은 한 평 땅에 묻힐 거면서…….”


욕망은 죄가 아니다

일찍이 순자(荀子)는 인간이 가진 욕망의 본질을 정확히 갈파했다. 그가 말하길, 사람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소고기와 돼지고기요, 입고 싶어 하는 것은 아름다운 비단이며, 길을 갈 때는 말이나 수레를 타고 싶어 하고, 끝내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죽을 때까지 만족을 모르는 것이 인간이다. 또 눈으로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리고, 귀로는 음성의 맑음과 탁함을 구별하며, 입으로는 짜고 시고 달고 쓴 것을 구별하고, 코로는 향기로운 것과 비린 것을 구별하며, 살갗으로는 차고 덥고 아프고 가려운 것을 구별하는 것 역시 인간의 타고난 성정이다.

탐욕의 바퀴를 굴리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본성은 소유욕이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시절부터 진화해온 것이다. 식량과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재물이 생존의 무기가 되면서, 조상들은 유전자 안에 욕망의 씨앗을 뿌려두었다. 우리는 이 탐욕스러운 생존자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식욕, 수면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 등 오욕(五慾)은 인간의 기본 욕구다. 이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계몽주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도덕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지고지순한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의 말대로 욕구가 사라진 사람은 감각과 상상력이 정지해버린 사람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 행복은 정신적 만족에 있지 않다. 행복의 추구는 끊임없는 욕구의 진행일 뿐이다. 죽음에 의해서만 그치는 영속적이고 부단한 욕망을, 그는 인간의 첫 번째 성향으로 파악했다. 존 스튜어트 밀 역시 <자유론>에서 ‘자유라고 불릴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자유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 한, 또 행복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자유’라고 언명했다. 추구의 자유는 곧 욕망의 자유다. 욕망이 끊긴 자는 죽은 자다. 문제는 우리가 기본적인 욕구 이상을 욕망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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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의 쳇바퀴

1970년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필립 브릭먼 연구팀은 복권당첨자들의 행복도가 크게 높아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복권에 당첨되기 전과 비슷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고 명명했다. 아무리 열심히 쳇바퀴를 굴려도 결국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한 것을 빗댄 것이다.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사람들도 사고 당시에는 몹시 불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인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우리가 쾌락의 쳇바퀴를 굴리는 이유는 변화된 상황에 너무 빨리 적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나아진 삶과 어렵게 획득한 행복에 쉽게 적응해버린다. 이런 경우를 상상해보자. 당신은 연봉 5천만 원을 받고 있는데 경쟁사에서 8천만 원에 스카우트하겠다고 제의해왔다. 고민 끝에 직장을 옮긴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자 새로 옮긴 회사가 도산해버렸다. 마침 옛 직장에서 알맞은 자리가 있으니 연봉 5,500만 원에 재입사하면 어떻겠냐고 제의해왔다. 당신은 옛 회사로 돌아가겠는가?

생계를 꾸리는 것이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다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연봉 8천만 원에 적응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하의 연봉을 주겠다는 것은 당신을 무시하는 처사다. 과거 그 직장에 있을 때보다 500만 원이 인상된 것이지만, 최근 6개월보다는 무려 2,500만 원이나 삭감된 것이다.


우리를 쾌락에 적응시키는 것은 뇌의 보상회로(reward pathway)다. 도파민이 작동하는 보상회로는 중독 회로이기도 하다. 도박꾼이 손가락을 자르고도 도박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웬만한 승리에 이미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다. 1천 달러를 딴 도박꾼은 1천 달러를 따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똑같은 승리는 도박꾼에게 희열을 주지 못한다. 그는 더 고조된 희열, 더 짜릿한 승리를 원한다. 도박에 중독되면 기계에서 쏟아지는 동전 소리만 들어도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때 뇌의 상태는 약물 중독자의 것과 같다. 약물은 게임기의 레버 같은 역할을 한다.


2015년 미국경제조사회의 보고서 <행복 반감기>에 따르면, 행복의 유효기간은 8개월쯤 된다. 라틴아메리카의 극빈층에게 낮은 가격에 주택을 제공하자 새집으로 이사한 직후 이들의 행복감은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8개월이 지나자 행복도의 60%가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는 행복뿐 아니라 고통에도 적응한다. 2003년, 15년 이상 미망인으로 살아온 1만 7,000명의 여성을 조사해보니 대부분 8년 안에 남편이 사망하기 전의 행복 수준을 회복했다.


적응 효과는 끔찍하리만큼 분명하다. 어린 시절엔 냉장고 없이도 잘 살았지만, 지금은 냉장고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무엇을 성취했든, 적응은 모든 것을 초기화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동기를 얻는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쾌감을 되찾기 위해, 또 그보다 더 큰 쾌감을 얻기 위해 더 나은 성취를 꿈꾼다. 그래서 인간은 행복에 중독된, 행복한 노예다. 뇌는 늘 더 나은 상태를 원한다. 욕망에서 벗어나면 고통에서 해방되지만, 안타깝게도 더 나은 상태를 원하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지상에 유토피아가 이루어진다 해도 사람들은 결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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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숙주, 욕망

욕망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욕망이 완전하게 충족된 상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인류는 욕망이 사라진 상태가 존재한다는 헛된 믿음을 키워왔다. 깨달음을 얻은 성자는 욕망을 지운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욕망을 가졌을 뿐이다. 그의 욕망은 모든 인류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성인이 세상을 다녀갔음에도 그들의 약속만 남아 있을 뿐 바라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욕망을 지울 수 있다는 가냘픈 희망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밖에 없다.


물질적 욕망을 버리기는 오히려 쉽다. 우리가 끝내 버릴 수 없는 욕망은 타인의 사랑을 욕망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타인의 사랑을 욕망한다. 타인이 우러르는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죄악의 숙주다. 역사적으로 보면 부당한 권력과 사이비 가르침이 이 숙주에서 발아했다.


행복을 얻기 위해 욕망을 극대화하는 것은 불행한 삶을 만드는 최악의 조리법이다. 모든 욕망은 새로운 욕망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욕망은 새로운 결핍과 새로운 파멸의 시초가 된다. 욕망이 남아 있는 한, 아무리 행복을 획득해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불행해지지 않는 최선의 길은 대단히 행복해지기를 갈망하지 않는 것이다. 즉 욕망을 절제의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자기 능력을 넘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욕망을 충족할 수도, 욕망을 버릴 수도 없다. 지속적인 행복은 이 두 개의 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가 쉽게 행복에 적응하듯이 고통에도 적응한다는 것이다. 적응은 고통을 잊게 하고 살아갈 힘을 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좌절과 시련을 겪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용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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