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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사망과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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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 전두환씨가 사망했다. 우리 나이로 91세. 불과 2년 전까지 골프장에 출입할 정도로 건강하게 말년을 보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제대로 천수를 누린 셈이다.


시민을 상대로 총을 쏜 독재자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여전히 “그래도 경제는 발전시켰잖아”라는 옹호론자들도 있다. 유력 대선 후보조차 이런 인식으로 조문을 고려했을 정도니 그 수는 무시하지 못할 수준일 것이다. 그의 부고 기사에 ‘전두환 전 대통령 서거’란 제목을 단 언론사 숫자는 ‘전두환씨 사망’이라고 쓴 언론사만큼이나 많다.

실제 그가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 경제는 호황이었다. 혹자는 ‘3저(원유·달러·국제금리 하락) 효과’를 본데다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 이뤄진 것이라며 폄훼하지만 경제 지표가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가 집권하던 1980년 28.7%나 됐던 물가상승률은 한 자릿수로 안정됐다. 1984년엔 2.3%까지 떨어기도 했다. 1980년 5.2%던 실업률은 그가 물러난 1988년 2.5%로 떨어졌고, 무역수지는 사상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오일 쇼크’로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은 집권기 내내 7~13%씩이나 됐다.


지금 ‘코스피’의 모태가 된 종합주가지수도 이때 100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1985년까지만 해도 10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장기 횡보를 보이다 1986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상승하기 시작, 그가 물러난 1988년 초에는 600대까지 치솟았다. 당시가 살기 좋았다는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나올만한 수치들이다.


이 같은 치적(?)에도 그가 추앙보다는 비난을 더 받는 이유도 명확하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군을 동원해 발포를 하면서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 탱크와 헬기, 기관총까지 동원된 광주에서는 사망자 163명, 행방불명자 166명을 비롯해 5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나왔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고문 당하고 죽은 사람도 적지 않다.

경제 성장의 과실은 사적으로 제대로 향유했다. 뇌물로만 수천억원을 챙겼다. 당시 경제 규모가 지금의 1/20 수준이었으니 지금 가치로는 족히 몇조 원대 뇌물이다. 눈밖에 벗어난 재벌을 해체시키기도 했다. 최고 권력자가 적극적으로 뇌물을 챙기니 권력형 비리도 규모가 달랐다. 6000억원대 어음 사기로 건국 이래 최대 어음 사기 사건을 일으킨 장영자는 그의 인척이었다. 당시 시중은행 자본금이 700억원이었다. 정권이 바뀌고 부정축재한 재산 규모가 밝혀지며 추징을 당했지만 재산을 은닉하고 추징을 거부했다. 덕분에 측근들을 대동하고 골프를 즐기는 등 죽을 때까지 호화로운 삶을 살았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도척'이라는 도적이 있었다. 부하 수천 명을 거느린 큰 도적이었다. 날마다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으로 회를 쳐 먹기도 했다. 그래도 호의호식 하다가 천수를 누렸다. 반면 서로에게 임금의 자리를 양보하며 자기 나라를 떠나 의인으로 추앙받던 백이와 숙제 형제는 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었다.


"하늘의 도란 것이 정녕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사마천이 백이·숙제와 도척의 이야기를 쓰면서 탄식한 말이다.




전필수 기자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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