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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연산군의 금표

최종수정 2021.11.23 11:10 기사입력 2021.11.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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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 위치한 연산군 10년(1504년) 만들어진 금표의 모습. [이미지출처=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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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조선시대 최악의 폭군이라고 불리던 연산군이 실각한 가장 큰 이유로 ‘금표(禁標)’라는 제도가 손꼽힌다. 금표란 원래 국방상 주요 요충지나 전략자원 생산지가 난개발로 인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정한 개발제한구역을 뜻하는 말로 오늘날 그린벨트와 유사한 제도였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궁궐의 개·보수나 전함을 만드는 데 나무가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유사시 사용할 목재의 확충을 위해 나무의 남벌을 막으려고 금표로 지정된 구간에는 택지개발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출입까지 엄격히 제한했다. 하지만 민생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주로 도심지와 거리가 떨어진 산이나 숲을 금표 지역으로 지정하곤 했다.

그러나 연산군이 이 금표를 주요 간선도로 일대는 물론, 도심지까지 확대 적용하면서 민심이 크게 이반되기 시작한다. 연산군은 도성인 한양과 경기도 일대의 난개발로 군사이동로까지 침범받고 있다면서 1503년부터 금표 구역을 기존보다 10배 이상 확대했다. 금표 구역에 포함된 주민들의 주택 이전비용도 모두 조정의 재정으로 충당하면서 재정손실도 엄청나게 발생한다.


해당 정책에 따라 경기도 일대 많은 마을들이 충청도 이남으로 강제 이전됐고, 경기도의 인구와 재정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1505년, 경기도 감영에서 도의 운영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상소를 올리자 원래 충청도에 속해 있던 평택을 경기도로 이전시키기까지 했다.


그나마 금표 제도 도입 초창기에는 수도 한양의 과밀화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조선왕조의 인구는 개국 100년만에 2.5배 이상 늘어난 1000만명을 기록했고, 인구 10만명을 염두에 두고 만든 한양의 인구도 30만명대로 크게 늘어났다. 조선 조정에서는 한양의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해 경회루보다 높은 기와집을 짓지 못하게 하는 등 고도제한까지 설정했다.

문제는 연산군이 이 금표 제도를 악용했다는 점이다. 그는 금표 지역을 임금의 내탕금을 관리하던 내장원에 맡기고 개발수익을 독점했다. 일부 토지들은 고위 관료들에게 나눠주거나 측근들에게 상을 내렸고, 여기서 나온 수익들로 매일 연회를 열어 재정을 탕진하면서 후에 ‘흥청망청’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부동산 개발수익을 왕이 독점해 버리고 측근들과 나눠 먹자, 그동안 왕실의 통치에 무관심하던 백성들의 원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의 제위 10년간 수많은 선비들이 처형당해도 조용했던 민심은 금표 정책 발표 후 불과 3년 만에 폭발하며 1506년, 중종반정으로 이어진다. 절대권력을 가졌던 임금조차도 부동산 문제를 건드리고선 살아남지 못했던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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