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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깐부 할아버지' 욕심 비운 연기에 '아름다운 인생'이 있다

최종수정 2021.10.20 12:32 기사입력 2021.10.2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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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배우 오영수
1968년 데뷔 '연극계의 전설'…무대는 삶의 목적·의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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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후시하라 겐시 감독의 다큐멘터리 '인생 후르츠'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이다. 주인공 노부부(슈이치·히데코)가 실천하는 삶의 철학이 요약돼 있다. 스스로 정한 의식과 규칙을 지키며 일상을 살찌우는 인생이다. 후시하라 감독은 작품 말미에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격언을 배치한다. "오래 살수록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이 작품을 좋아한다는 배우 오영수(77·본명 오세강)씨도 비슷한 가치관이 내면화돼 있다. 우리말 가운데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가장 선호한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회, 아름다운 사람…. 무대를 떠나는 뒷모습까지 아름답길 희망한다. 실마리는 단순한 장수(長壽)가 아니다. '인생 후르츠'에서 내레이션을 읊은 배우 기키 기린(1943~2018)은 "집착을 버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홀로 우뚝 서라"고 조언했다. 그는 그렇게 되찾은 순수함으로 설득력 있는 연기를 완성했다. 오씨도 마찬가지다. 사사로운 생각 없이 천천히 호흡하며 말과 말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의 언어를 끄집어낸다. 일상적 현실에서 발견한 삶의 진정성을 표현한다.

영화 '인생 후르츠'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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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 세계가 알아본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으로. '깐부 할아버지'로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오일남은 돈과 권력을 쥔 게임의 설계자지만, 알고 보면 선과 악이 모두 깃든 보편적 인간이다. 구부정한 자세로 팔을 휘저으며 천진난만하게 웃다가도 결정적인 순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허를 찌른다. 삶을 깨달은 자의 기지(機智)를 보여준다. 오씨는 욕심을 부리거나 의식해서 표현하지 않았다. 극 중 설정대로 '약간 치매기가 있는 뇌종양 환자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배역 안에 들어갔다.


그는 시간이 흐르고 경륜이 쌓여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연극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68년 극단 광장에서 배우로 데뷔했다. 극단 성좌·여인·자유를 거쳐 1987~2010년 국립극단에서 활동했다. '파우스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베니스의 상인', '리처드 3세' 등 연극 200여 편에 출연했다. 영화(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동승)와 드라마(선덕여왕·무신)에서는 주로 승려를 그렸다. 수행자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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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걷던 나그네가 예쁜 꽃을 봤을 때 젊은 사람은 그 꽃을 꺾어 가져오고, 중장년은 꽃을 캐서 자기 집 정원에 심고, 더 나이가 들면 그 자리에서 본 뒤 그대로 두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해요. 일흔 살이 넘으니 그렇게 그냥 두고 다 놓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연기에도 지나친 욕심을 내지 않게 되더군요."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To have or to be)'에 나오는 이야기에 나이를 더한 설명이다. 크든 작든 베푸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실제 경험에서 체득한 깨달음이다. 서른네 살에 자만하고 욕심을 부리다 연극 '파우스트'를 망쳐버렸다. 메피스토가 어울린다는 주위의 권유에도 파우스트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급기야 지구본을 잡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잠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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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는 악마와 거래한 나이 든 지식인 파우스트가 젊은 시절로 돌아가 100세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끊임없이 고찰하는 내용이다. 자연은 범접할 수 없는 힘으로 묘사된다. 파우스트는 그 앞에서 유한성을 느껴 더없이 자연을 동경한다. 자연의 치유를 통해 절망에서 벗어나기에 이른다. 오씨도 나이를 먹을수록 그 가치를 중시한다. 그래서 죽기 전에 꼭 한 번 파우스트를 다시 연기하고 싶어 한다. 진정한 배우는 인생을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배우에게는 무대가 삶의 목적이고 의미에요. 무대는 현실을 반영하는 공간이죠. 고로 배우란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 속에서 인간의 가치와 목적이 뭔지 풀어가고 말해주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러자면 인생을 노래해야 하는데, 요즘 연극과 영화에는 사건만 존재해요. 셰익스피어 작품이 500년 동안 살아있는 건 사건만 다루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인생, 특히 노(老)가 있기 때문이에요. 유럽·일본과 달리 우리는 그런 작품이 없다 보니 나이든 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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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무대를 내려올 생각은 없다. '인생 후르츠' 속 슈이치와 비슷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일본주택공단은 1959년 이세만 태풍이 5m 높이 파도와 함께 5000명의 생명을 앗아가자 고지대에 뉴타운 건설을 계획한다. 설계를 맡은 슈이치는 마을에 숲을 남겨두고자 했다. 바람과 달리 비싼 건물들이 대규모로 조성돼 산은 깎여나가고 계곡은 묻혀버렸다. 슈이치는 죽는 순간까지 이곳에 숲을 만들었다.


오씨도 무대에 올라 연기에 전념한다. 움츠러들지 않고 유쾌한 마음으로 세상만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인다. 차근차근 천천히 관람객에게 말을 건네며 일상을 살찌운다. '오징어 게임'에서 비롯된 조명은 그렇게 얻은 열매다. 인격의 힘으로 나이가 들수록 더 달콤해진다.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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