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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혼란·의심스러운 문제 단숨에 해결하는 지름길,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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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행복을 분비하는 믿음

이용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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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유령, 외계인, 사후세계, 사라진 고대문명 등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별의별 것들을 다 믿는다. 또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 조직적으로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 중에는 교양을 갖춘 지식인들도 꽤 있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것일까?


믿음의 유혹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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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대의 심리학자 토머스 키다는 ‘생각의 오류(Don‘t Believe Everything You Think)’에서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여섯 가지 오류를 지적한 바 있다. 사람들은 객관적인 통계보다 스토리를 좋아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추론을 옳다고 확정하며, 사건을 해석할 때마다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한다. 또 세상을 잘못 인식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하며, 불완전한 기억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스토리, 믿음, 의미, 사실, 기억이 옳다고 착각한다.

믿음은 혼란스럽고 의심스러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주는 지름길이다. 불확실한 것, 보이지 않는 것, 알 수 없는 것을 의심하는 순간 뇌는 복잡해진다. 풀리지 않는 의문과 불확실성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러나 자신이 추론했던 것을 그대로 믿어버리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뇌는 쓸 데 없이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뇌는 확실한 믿음,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그것의 정체가 매우 단순하리라는 믿음 앞에 쉽게 굴복한다. 이로부터 얻은 질서, 균형, 대칭은 뇌를 편안하게 해준다. 이것이 믿음의 역할이다.


일단 어떤 믿음을 받아들이고 나면, 뇌는 그것을 뒷받침하거나 지지할 수 있는 모든 증거들을 끌어모아 튼튼한 성을 쌓는다. 기존의 믿음을 보호하기 위해 얼토당토않은 넝마들을 그러모아 단단한 철갑을 두르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성향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부른다. 확증편향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논리적인 대화나 토론은 불가능하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믿음을 형성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성향을 타고 났다고 말한다. 우리는 기존의 믿음을 확장하고 보존하기 위해 뻔뻔하게 자신을 속이는 뇌를 가지고 있다. 자기를 기만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사람들이 한 번 형성된 믿음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은 믿음 자체가 즐거움을 주고,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본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본다.

벗어날 수 없는 인과의 사슬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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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이 사라졌던 카드가 마술사의 입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관객들은 환호한다. 그들이 환호하는 것은 마술사가 물리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마술사의 몸짓 하나로 카드가 사라지고, 어떻게 그 카드가 마술사의 입에서 나오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을 때, 뇌는 기어이 원인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과거 조상들은 자연이 변덕스럽게 변화하는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오직 상상만으로 원인을 추론해야 했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영원회귀의 신화(The Myth of the Eternal Return)’에서 원시인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짐승의 뿔에 찔린 상처의 원인은 명확하다. 그러나 몸이 입은 상처뿐 아니라 불치의 질병, 가족의 죽음, 가뭄이나 폭우, 사냥감의 감소도 인간을 고통스럽게 한다. 원시인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느닷없이 자신에게만 찾아온 이 고통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 때문이라고 믿었다. 과거의 과오를 용서하고 고통을 치유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는 누구인가? 엘리아데는 이러한 의문이 샤머니즘의 출발점이라고 추론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나면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 원인을 알면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물과 사물, 현상과 현상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이런 능력은 매우 쓸모가 있었다. 인과관계를 알면 행동을 계획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인과관계를 통해 결과를 예측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침팬지는 레버를 누르면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금세 배우지만, 동작과 동작 사이의 인과관계를 지각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문제는 인과적 사고가 가끔 착오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착오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부정 오류’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 오류’이다. 숲속을 걷다가 방울소리를 내는 뱀을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독사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모든 뱀이 독을 가졌다고 믿는 편이 낫다. 자칫 방심했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존재한다고 믿는 부정 오류는 생존율을 높인다. 반면 긍정 오류는 존재하지 않는 위험을 존재한다고 믿거나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것을 믿는 것이다.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여기에 해당된다. 기우제는 아무 효과가 없지만, 사람들에게 심리적 위안을 준다. 이 때문에 우리는 쉽게 미신과 마법에 빠져든다.


사이비과학의 정체를 폭로하는 데 주력해온 마이클 셔머는 ‘믿음의 탄생(The Believing Brain)’에서 믿음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패턴성, 둘째 행위자성, 셋째 확증 편향이다. 첫째, 패턴성은 무작위적이고 임의적인 정보들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구름에서 동물의 모습을 보고, 테러 현장의 연기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 행위자성은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누군가의 의도적 행위가 개입돼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물과 현상을 의인화함으로써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가령 사람들은 가뭄과 폭우를 신의 분노로 인식한다. 셋째, 확증 편향은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만을 모으는 것이다. 허황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불규칙하고 무작위적인 정보에서 재빨리 패턴을 찾아내어 보이지 않는 존재의 의도를 불어넣는다. 여기에 확증편향이 결합하면 그것은 진실이 된다. 유령, 악마, 외계인은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믿음을 분비하는 뇌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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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생각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행동을 위한 기관이다. 우리는 뇌로 감각하고, 예측하고, 계획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사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이 많기 때문이다. 행동을 통해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행복이다. 행복은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하도록 이끄는 유도등이며, 불행은 생존에 불리한 행동을 피하도록 알리는 경고등이다. ‘믿음의 회로’ 역시 행동을 제어했던 뇌의 신경회로가 확장된 것이다. 뇌는 확실하고 명확하며 예측 가능한 것을 선호한다. 믿음은 빠르고 단순하며 직관적이다. 또 믿음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순식간에 제거해준다. 믿음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 번 형성되고 나면 뇌가 들여야 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믿음은 뇌의 타고난 특성인 것이다.


뇌는 의심하는 것보다 믿는 데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고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기쁨으로 성소를 찾는 신앙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종교적인 믿음은 뇌가 궁금해하는 존재의 이유와 사후세계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공한다. 현실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죽어서라도 행복을 누리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종교가 전하는 스토리 역시 우리에게 만족감을 준다. 거기에는 현실세계의 핍박, 고통과 방황, 극적인 귀환과 영적 승리, 미래에 대한 약속과 경고가 담겨 있다. 이런 스토리야말로 행복을 퍼뜨리는 복음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이 상상하는 세계를 믿게 된다. 종교는 사람들이 믿고 싶은 것을 제공하고, 그 믿음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신의 이름으로 보증해준다. 다수가 믿으면, 그것은 진실이 된다.


이용범 소설가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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