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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취향과 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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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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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술시장은 2007년 이후 오랜 침체기를 지나 최고의 호황으로 향하고 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대를 겪으면서 누구도 쉽게 예견하지 못했던 일이다. 길고 긴 불황을 감내해 온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판매되는 현상에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과연 이 현실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의아해한다. 늘 그랬듯이 한낮의 단꿈처럼 쉬이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오래 전 미국의 한 뮤지엄에서 ‘Incognito(익명)’라는 프로젝트가 수년간 개최된 적이 있다. 수백여 점에 이르는 작품들이 작가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전시되었고 이 모든 작품을 균일가 250달러에 판매하였다. 그 수익은 미술관 후원금으로 조성되어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창구를 열었다. 출품작은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유명 작가들의 것이었는데 구입을 결정하면 그 사람에게 작가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한 번은 20세기 거장의 드로잉이 포함된 적이 있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전시는 아티스트의 명성에 흔들리지 말고 그야말로 자신의 취향을 한번 찾아보라는 미술관의 특별한 제안이었다.

종종 주변 분들이 어떤 작품을 보여주면서 구입해도 되겠냐고 묻곤 한다. 물론 그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알지만 나의 대답은 늘 변함없다. 취향이시라면.


취향은 수많은 예술작품들처럼 서로 다르고 각양각색이다. 우리는 소박한 핸드메이드 제품에서부터 고가의 명품 브랜드까지 다양한 소비를 하며 살아가지만 예술작품은 그 궤도를 벗어나 있다. 미술품을 사치나 투기의 목적으로 보는 시각이 순수한 취향을 가리고 작품을 구입할 때에도 자신의 판단이 아닌 예측의 데이터가 소비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숭고한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는 행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미술작품의 수집은 단순히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제 곧 취향을 넘어 안목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온다.

저명한 화상 볼라르(A. Vollard·1866~1939)는 세잔, 피카소, 마티스 등 역사적인 거장들이 인정받지 못하던 시절에 그들의 첫 번째 전시를 개최해 주었다. 당시 그 역시 신인 화상이었다. 그는 사회에서 외면받던 작품들을 우선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무명 작가들과 함께 성장해 나갔다. 그의 선택은 머지않아 시대를 이끌어 가는 안목이 되었다. 볼라르는 작품에 예술가를 투영하고자 했다. 자신이 만난 예술가들에 관하여 세심하게 기록하였고 인상파 화가들의 전기를 집필했으며 화집과 책을 통하여 그가 처음에 가슴으로 품었던 작가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이미 알려진 화가들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취향만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하는 것은 안목의 몫이다.


다시 현재의 미술시장으로 돌아와 보자. 분명 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새로운 컬렉터 층위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들은 놀랍게도 소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이다. 또한 주목할 것은 새로운 컬렉터들은 아트테크의 목적보다 작품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데 더 큰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개성으로 컬렉션을 구축해 가는 모습이 반갑다. 컬렉션이 특정인의 고고한 취미를 넘어 미술을 즐기는 애호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예술이 오롯이 예술로 읽히는 투명하고 진실된 시대의 서막을 올리는 것일까. 취향은 안목을 높이고 또 다른 취향을 만들며 예술 생태계를 살찌운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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