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시시비비] 건축과 정치, 그리고 말

최종수정 2021.06.11 14:14 기사입력 2021.06.11 14:14

댓글쓰기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썝蹂몃낫湲 븘씠肄

국민의당 대표를 뽑는 선거가 열기가 뜨겁다. 소문을 확인하려 영상 몇 개를 찾아보았다. 토론회와 연설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나이 차가 나는 후보들 간의 공방이 날카로웠고 그중에서도 신세대 젊은 후보의 연설이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늘 쓰던 수사와는 분명 달랐다. 특히 대구에서 연설은 탄핵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차분하면서도 의연하게 설득했다. 겸손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았고 논리적이면서 적절한 수준에서 개인적이며 감성적이었다. 이전 정치인들과는 다르게 내용은 날카롭고 형식은 세련되었다.


개인적인 정치 성향과 거리가 있는 정치인의 ‘말’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뼈아픈 경험 때문이다. 벌써 삼십 년도 지난 일이지만 유학 초기의 문화 충격은 예상외로 컸다. 신용카드나 주5일제부터 햄버거나 피자 같은 문화는 생소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정작 어려운 것은 말, 즉 수업 시간 발표였다. 건축설계 수업이 도면이나 모형을 만드는 실기 과목이니 언어 문제가 덜하리라는 기대는 첫 시간부터 깨졌다.

문제는 언어가 아니었다. 영어가 서툴더라도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단어만 나열하는 설명이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설계의 과정과 논리를 설명하는 게 중요했다. 그간에 받았던 교육과는 달랐다.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며 의견과 지시를 듣는 게 전부였다. 강의는 이심전심이며 염화시중이고 교외별전이었다. 창작의 시간이었지만 선생님 말씀 따라하기가 주된 과제였다.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발표는 기회가 없었기에 기대할 수도 없었다.


유학 시절 은사는 고전하는 외국 유학생을 다독이며 발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건축가라는 직업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다른 예술가들과 달리 건축가는 의뢰인, 건축주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뢰인에게 앞으로 좋은 건물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화가나 조각가가 그림이나 조각품을 완성한 후 이를 판매하는 것과는 선후 관계가 매우 다르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건물을 짓는 일을 건축가의 심미안을 반영해서 설계하고 완성하겠다고 건축주를 설득하는 일이니 보통 일은 아니다. 지난 실적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데 실적이 없는 청년 건축가들에게는 열 배로 어려운 일이 된다.


은사께서는 건축가는 비전과 취향을 파는 것이며 그게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이 말이며 발표라고 강조했다. 도면을 그리며 모형을 만들며 했던 그 많은 생각을 보태거나 과장하지 말고 논리적으로 발표할 것을 충고했다. 그 논리가 다시 창작 과정을 점검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지나친 겸손보다는 자신감을 담을 것도 덧붙였다. 귀국 후,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마찬가지로 말과 논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논술 교육의 덕택인지 요즘 학생들은 거침이 없고 논리적이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정치가는 건축가와 유사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파는 사람들이다. 유권자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말’로 약속을 하는 사람이다. 발표와 연설의 스타일은 정치의 중요한 일부이다. 무형의 가치를 말을 가지고 선매도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감동적인 연설을 들은 기억이 없다. 수많은 토론회를 거치면서도 생각을 바꿀 만한 논리적인 토론도 본 적이 없었다. 정치인의 어눌함이 깊은 속내의 진정성이라고 믿어주던 시간은 간다. ‘말 잘하면 빨갱이’라는 한마디로 토론을 억압했던 시대도 퇴장한다. 내용만 진실하면 형식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믿음도 저물어 간다. 대신에 적확하고 신선한 논리와 세련된 스타일을 갖춘 세대가 몰려온다. 새로운 세대가 온다.


이경훈 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TODAY 주요뉴스 이장희, 울릉도 집공개 "축구장 6개 합친 크기" 이장희, 울릉도 집공개 "축구장 6개 합친 크기... 마스크영역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