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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남성중심 젠더질서와 성평등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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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남성중심 젠더질서와 성평등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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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험을 남성들은 자주 한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가방 속에 넣어둔 달달한 먹거리를 주곤했다. 아이들이 예뻐서 그랬고 이웃 간 인사를 나누어서 좋았다. 그런데 이른바 ‘조두순 사건’ 이후 그만뒀다. 본래 친해진 이웃이야 그렇진 않았지만, 처음 본 부모들, 특히 여아 엄마들이 불편해 하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조두순과 나를 동격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나빴다. 밤늦은 시간 문이 닫히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뛰어서 간신히 탔는데, 혼자 타고 있던 여자가 자지러지게 놀라며 비명을 지른 적도 있었다.


왜 나는 남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경험을 할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고 살아야 할까? 아니면 나도 그런 사람일까? 혼란스럽다. 이러한 혼란이 시작되는 지점에 남성 중심 ‘젠더 질서’가 있다. 남배우, 남의사, 남교수, 남검사는 어색해도 여배우, 여의사, 여교수, 여검사는 자연스럽다. 남성이 기준이고 그다음에 여성이 있기 때문이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남자의 시선이 기준이 돼 여자에게 해온 장난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행동들을 다 성폭력이라고 부른다.

장난과 성희롱, 성폭력의 경계가 급변하는 시간을 한국 사회는 경험하고 있다. 법규정으로만 정리할 수 없는 혼란의 시기다. 법으로만 따지면 성희롱이고 성폭력이지만 남녀를 막론하고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장난이고 남자다움의 표현이다. 법은 빨리 바뀌고 있지만 우리의 가치와 규범은 서서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기준이 되는 젠더 질서는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는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연못 속 개구리가 죽을 수 있다. 남성의 기준에서는 장난이고 사랑의 표현일지 모르지만, 여성의 기준에서는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이 겉모습 하나만으로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한다.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인종차별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어느 으슥한 밤거리에서 내 앞에 나타난 백인은 나를 때릴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다. 윤여정 배우가 경호원을 대동하고 미국 거리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걱정하는 기사가 나온다. 이렇게 걱정하는 심정으로 우리 사회에 눈을 돌려보자.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희롱ㆍ성폭행을 당할 수 있는 젠더 질서가 있다. 잠재적 피해자로서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그 여성에게 남성인 나는 잠재적 가해자다. 그래서 구체적 상황에서 내가 그런 사람으로 오해 받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하는 젠더 질서가 사라진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서로 손가락질만 할 일이 아니다.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냥 허겁지겁 엘리베이터에 탔을 뿐인 내가 성폭력 가해자 같은 모습으로 여자에게 보여지도록 하는 젠더 폭력 사례와 그 구조가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좀 시끌해지는 것 같으니까 여성가족부 장관은 관련 교육 동영상을 내리게 했다. 여성가족부 존재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평등 관점을 지키려는 사람과 조직을 보호하고 지원해 주는 데 있다. 그 역할을 장관이 나서서 공개적으로 뒤로 미뤘다. 무슨 깊은 뜻이 있으셨나? 어쨌든 유감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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