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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한 중소 급식사 사장의 하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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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7년 어느 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게 한 중소기업인이 어렵게 찾아왔다. 매출 300억원대의 중소 급식 업체를 20년째 운영 중인 그는 이마트 사내식당을 외부에 개방할 의사가 없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정 부회장은 현장에서 의외의 답을 내놨다. "(급식 사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도 입찰로 경쟁해야 하는 게 맞다. 혹시라도 입찰을 따내면 우리 직원에게 양질의 음식을 먹여주고 한 끼 식사가 더 맛있어졌다는 이야기를 꼭 듣게 해달라."


벼랑 끝 위기에 몰렸던 중소 급식사는 20년 이상 한우물을 판 업력을 발판으로 이듬해 초부터 이마트 3개점 직원식당에서 매일 밥을 짓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호평을 받은 덕분에 급식을 전담하는 이마트 점포 수를 21개까지 늘리며 그야말로 기사회생했다. 상위 5개 대기업의 전유물과 같은 급식 시장에서 보기 힘든 상생 사례다. 정 부회장은 이후에도 비슷한 규모의 중소기업에 사내식당을 추가로 개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8개 대기업과 함께 구내식당 일감 개방을 선언한 자리에서 신세계가 돋보인 것은 선제적인 노력이 뒤늦게 빛을 발한 경우다. 다른 대기업과 달리 신세계는 이미 42개 사업장(21%)을 중소기업 등에 개방했다.

여러 논란을 뒤로 하고 삼성이 먼저 사내식당 입찰 공고를 내고 외부 업체를 선정했는데 뒷맛이 개운치 못하다. 삼성전자는 프레젠테이션(PT)과 현장 실사, 블라인드 품평회까지 3단계에 걸쳐 공정하게 뽑았다는데 결국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물량이 배정됐다. 지명 입찰이라서 삼성에 간택되지 못한 기업은 참여 자체가 불가능했고 1차 PT의 벽을 넘은 중소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삼성전기는 최근 2년 동안 단일 사업장 기준 하루 식수 3000식(食) 이상 업체를 참여 조건으로 내걸어 중소기업에는 높기만 한 벽이었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대기업과 굵직한 중견기업만이 PT에 참여했으며 동원과 신세계, CJ 3파전 양상이다. 겉보기에는 수의계약 대신 경쟁 입찰 방식을 취했지만 특정 집단에 일감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는 여전한 셈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겠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이라는 공정위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 중소 급식사 최고경영자(CEO)는 "입찰 현장에 가보면 시작부터 공정하지 않은 싸움터라는 게 느껴진다"면서 "급식 하나로만 잔뼈가 굵은 중소기업이 3000식이고 1만식이고 못할 이유가 없는데 일단 배제하려는 분위기"라고 울분을 토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의 태생적 한계가 못 미더우면 대기업이 상생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서로에게 든든한 사다리가 돼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지적은 일리 있다.


공정위가 대기업 밥그릇에까지 관여하느냐는 뒷말이 무성하다. MZ 세대의 반란으로 연결하는 여론도 등장했다. 이번 대기업 급식 일감 개방이 일회성이 아닌 구조적 변화의 출발점으로서 훗날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신세계의 선행처럼 대·중소기업 ‘상생’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새로운 파격 사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시아경제 김혜원 산업부 차장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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