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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코로나가 부른 살균시대…제2 가습기사건이 오면

최종수정 2021.04.07 13:26 기사입력 2021.04.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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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의 두 얼굴

김병민 과학저술가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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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섯 살 어린이가 손 소독제 뚜껑을 누르다 용기에서 뿜어져 나온 소독제가 눈에 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갔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이미 각막에 화상을 입은 뒤였습니다. 소독제 위치가 아이에게는 너무 높았죠. 어른들이 미처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어른의 눈높이에서는 너무도 당연해 저 높이에 놓여 있는 게 맞는지 질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질문이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장과 효율이라는 단어 앞에서 질문이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더 안타까운 것은 질문에도 어려운 답은커녕 대꾸조차 들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마치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 부모의 답답한 심정이 되기도 합니다.

독일어에 ‘바겐부르크 멘탈(Wagenburg mental)’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바겐부르크는 4륜 수레로 만든 성(城)이라는 의미죠. 이 수레는 일종의 이동식 요새입니다. 주로 전쟁의 전술로 사용됐습니다. 실제로 15세기에 헝가리·폴란드·왈라키아의 연합군이 오스만 군대와 격돌할 당시 바겐부르크로 오스만 군대의 공세를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밖에서 들리는 소리마저 무시하고 외부와 단절한 정신적 행위를 이 용어에 비유합니다. 그런데 정작 답해줘야 할 상대가 이런 태도를 보이면 어떨까요? 게다가 그 상대가 국가라면 어떨까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 1심 재판
유통·판매 기업인들에 무죄 판결
피해자만 있고 책임지는 이 없어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1심 재판이 진행됐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 연관된 가습기 살균제 유통·판매 기업인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과 폐 질환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피해자만 있고 누구에게도 책임은 없는 사건이 된 겁니다.

가습기 사건을 복기해봅시다.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된 문제의 물질은 총 4종이었습니다. 이름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입니다. 이 어려운 이름의 물질들을 다시 꺼낸 이유가 이 물질들의 화학적 특징과 차이에 대해 설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물질들은 물성뿐 아니라 제조사, 판매사, 제품 출시 기간도 달랐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등장한 물질이 폐 섬유화와 인과성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CMIT와 MIT입니다. 두 물질을 포함한 가습기 살균제라는 상품이 나온 1994년에도 ‘유해물질관리법’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에는 1991년 이전부터 이미 사용해온 화학물질은 유해성 심사를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지요. 결론적으로 두 물질은 규제 조항의 빈틈을 타고 세상에 나온 것입니다. 아무리 기존에 사용된 화학물질이라도 가습기라는 새로운 용도로 변경된 경우 확인되지 않은 독성이 발현되는지 누군가 제동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 PHMG가 등장합니다. 이 물질은 그 전에 없던 새로운 화학물질이었죠. 신규 화학물질이니 유해성 심사를 받았지만 독성 시험자료가 첨부되지 않고 통과됐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이 물질은 고분자 물질입니다. ‘폴리(poly-)’라는 용어로 시작하는 물질 대부분은 고분자입니다. 그런데 유해물질 신고 관련 고시 조항에 고분자 물질은 시험성적서 제출을 생략할 수 있다고 명시된 것입니다. 이어 2003년 PGH 역시 별 저항 없이 심사를 통과해 네 물질 모두 세상에 나오게 된 겁니다.


고분자 물질이 저분자 물질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건 맞습니다. 분자량이 너무 커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조직에 침투하거나 반응하기 쉬운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PHMG와 PGH의 경우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입니다. 분자에 이온 성질이 있다는 건 전기적으로 극성이 있다는 뜻이죠. 결국 그 자체로 반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고분자 물질이 물에 녹으면 독성이 발현될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겁니다. 시기적으로 이미 선진국에서는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에 대해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규정에는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의 유해성 심사가 강제 조항이 아닌 선택 조항이었습니다. 기업으로서는 굳이 심사할 이유가 없었겠죠.


사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참사를 막을 기회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화학물질을 둘러싼 이해관계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눈이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가장 간단한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이 물질은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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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독일 진정제 '콘테르간'
1만명 신생아가 기형아로 태어나
독일 정부 아무런 행동도 안해

1957년 독일 제약회사 그뤼넨탈이 만든 진정제 ‘콘테르간(Contergan)’은 가장 비극적인 의약품 사고를 만든 약물입니다. 독일에서만 최대 1만명의 신생아가 기형이라는 피해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태아가 생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독일 정부는 약의 주성분인 ‘탈리도마이드’라는 물질에 대한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콘테르간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독일 정부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인이 다른 데 있다고 주장했죠.


심지어 참사 원인이 탈리도마이드라는 게 밝혀진 뒤에도 독일 정부는 특별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할 기관인 연방 보건청은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제약회사도 적절하게 이를 통제하지 않아 화만 키웠습니다. 당시 독일 기관의 태도가 바로 ‘바겐부르크 멘탈’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밝혀진 초기에 보인 우리 정부의 태도와 지금의 모습들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류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습니다. 상처 소독에만 사용하던 알코올이 일상으로 들어왔죠. 우리는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길 때마다 손과 주변 공간을 소독합니다. 소독제는 이미 일상 필수품이 됐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몸에 소독제가 분무됩니다. 공항의 금속탐지기처럼 출입구 양쪽에서 안개처럼 뿌려지는 살균제를 통과해야 하는 공간이 늘고 있습니다. 다중이용시설에서도 연막이나 분무 소독이 당연하게 실행됩니다.


그런데 소독제로 사용되는 물질은 알코올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 물질이 있겠지만 흔히 사용되는 것은 ‘차아염소산’이나 ‘염화벤잘코늄’이라는 암모늄 계열의 물질입니다. 화학물질 이름은 늘 어렵고 듣기 불편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두 성분 모두 흡입 독성이 존재할 수 있는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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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과거를 겪은 인류에게
'이 물질은 과연 안전한가'
현시대 꼭 필요한 질문이 되다

우리는 이 상황을 질문의 형태로 옮겨야 합니다. 흡입 독성이 있는 물질을 ‘정말 공기 중에 뿌려도 안전한 걸까’ ‘가습기 살균제 같은 시나리오 아닌가’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억에서 흐릿해져 가는 사건 조각을 다시 꺼내고 조립해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과 맞춰봐야 하는 퍼즐인 겁니다. 그리고 당시에 못했다면 지금 해야 합니다. 이것이 과거의 아픈 경험으로 얻은 교훈이니까요.


물론 화학물질은 많은 양이 많은 일을 합니다. 어쩌다 잠시 접하는 경우라면 호들갑 떨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안개 너머로 날마다 드나들어야 하고, 심지어 분무하는 노동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 연금술사는 물질로 권력을 조절할 수 있었죠. 누군가에게 힘을 쥐여주고 거꾸로 빼앗기도 했습니다. 때론 어리석은 자에게 쥐여주는 바람에 인류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연금술사들에게는 묵시적 규율이 있었습니다. 물질을 다루는 행위에 윤리적 책임도 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늘 엄격했죠. 항상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에게 몸은 물론 마음에도 상처 입히지 않게 배려했습니다. 연구 과정이나 결과를 암호화해 기록하는 연금술사들의 행위에 대해 학문적 이기심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때로 위험할 수 있는 지식을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속 깊은 이면 역시 있었습니다. 연금술사의 윤리와 정의를 현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걸까요?


다시 묻습니다. 이 물질은 안전한가요? 누군가는 바겐부르크에서 나와 답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답하는 과정에서도 눈높이는 중요합니다. 특히 과학에서는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죠. 워낙 과학은 언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수학과 공식, 단위 혹은 용어를 사용하는 과학의 언어는 보통 사람들에게 외국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통역에 가까운 대답을 해줘야 합니다. 대답해야 할 상대는 반드시 우리의 눈높이에서 답해주시길 바랍니다.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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