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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세계 최초의 경제공황

최종수정 2021.02.23 11:10 기사입력 2021.02.2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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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 일대 면화농장의 모습[이미지출처=미국 국립기록관리청]

19세기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 일대 면화농장의 모습[이미지출처=미국 국립기록관리청]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의 미·중 무역 분쟁 기조가 바뀌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주목받는 것이 세계 최초의 경제 대공황으로 알려진 ‘1837년 금융공황’이다. 180여년 전 발생한 금융공황임에도 오늘날 미·중 무역 분쟁 구조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있기 때문이다.


1837년 금융공황은 표면적으로는 미국 면화 가격 폭락 사태에서 시작됐다. 1836년까지 매해 5% 이상 상승세를 타던 미국 면화 가격이 그해 갑자기 70% 이상 급락했다. 면화 가격 폭락은 수천㎞ 떨어진 중국 청나라의 아편금지법에서 비롯했다. 1837년 청나라 황제 도광제는 1년 예산과 맞먹는 연간 2만8000t의 은이 영국으로 유출돼 무역수지 적자가 심각하다는 조정의 보고서에 아편무역을 금지키로 결정했다. 그는 매우 엄격한 아편 금지론자인 임칙서를 광동에 파견, 아편무역 단속에 나섰다. 이 소식에 아편무역으로 가까스로 흑자를 기록 중이던 영국의 대중 무역수지에 빨간불이 켜졌다.

영국 기업들은 대중 무역수지 악화 전망에 미국산 면화의 수입을 크게 줄인다고 발표했고, 미국 면화농장들은 도미노처럼 연쇄 도산했다. 뒤이어 면화농장에 신용 융자를 해준 미국 지방은행 1500개도 한꺼번에 도산하면서 사상 초유의 전 세계적 금융 위기 사태가 벌어졌다. 앞서 5년간 부동산 투기에 땅값이 1000% 이상 폭등한 시카고, 일리노이 등 주요 면화 생산지들의 부동산 거품이 한꺼번에 가라앉으면서 여기에 투자한 유럽 투자자들도 일제히 파산했기 때문이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신사의 나라인 영국도 체면을 돌아보지 않게 됐다. 1839년 10월 영국 의회는 청나라에 보낸 무역사절단이 또다시 관세장벽 철폐에 실패하고 돌아오자 전쟁을 일으키기로 결의했다. 이후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1842년 난징조약을 통해 3300만달러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미국이 알래스카를 러시아에서 매입하는 데 쓴 720만달러의 4배가 넘는 엄청난 돈이 들어오면서 1837년 금융공황은 이 배상금으로 끝내게 됐다.


오늘날 미·중 무역 분쟁도 중국의 분쟁 대상국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변한 것을 제외하면 비슷한 구조로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 무역수지 악화에 코로나19 사태가 겹친 미국과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의 내수경제 강화론의 충돌이 또 다른 아편전쟁으로 귀결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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