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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2020년 도시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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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2020년 도시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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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공간에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일은 관광객과 외지인의 몫이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인상적인 서울의 풍경 가운데 하나는 네온사인 간판으로 장식된, 사람들로 가득 찬 유흥가 골목이며, 다른 하나는 흔히 말하는 '빌라'라고 이야기되는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이다. 이제는 많이 다양해졌지만 그래도 적벽돌 외장, 반지하와 옥탑방, 옥외 계단으로 대표되는 빌라는 아파트 그늘에 밀려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지만 서울을 상징하는 주거 공간이다. 서울의 42%는 아파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빌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3가지다. 반지하, 옥외 계단, 그리고 옥탑방이다. 지금은 열악한 주거지의 상징처럼 간주되지만 한때는 이런 공간들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공간으로 간주됐다. 서울의 주택난은 과거에 더 심각했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절대 공간이 부족했었다. 지하실은 물론 창고 등을 주거 공간으로 개조해 임대하는 일이 많았다. 화장실은 옥외 재래식 화장실을 공용으로 이용했고, 부엌이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부엌과 화장실을 설치하면 불법 건축물이 되기 때문이었다. 주거 환경은 당연히 최악이었다.

서울의 주택난 과거에 더 심각
1984년 다세대주택 첫 등장
반지하·옥외계단 등 허용

현실적으로 이를 단속할 수 없었던 정부는 1984년 11월 건축법을 개정해 '다세대주택'이라는 새로운 범주의 주택을 등장시켰다. 다세대주택은 지하 공간을 활용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원래 지하실은 거주 공간이 아니었으며, 3분의 2 이상이 지표면 아래에 있을 경우에만 용적률 계산에서 제외되는 대피 공간이었다. 당연히 채광과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거주 공간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채광과 통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실 높이의 절반만 지표면 아래에 있어도 지하실로 인정해줘 용적률 계산에서 빼줬고, 그전까지는 허용되지 않던 부엌과 화장실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반지하는 이때부터 합법의 길을 걷게 됐다.

다른 변화는 옥외 계단의 허용이었다. 원래 건물 외부에 별도의 계단을 설치하면 건축물 면적에 포함됨에 따라 당시 주택들은 1층에 거주하는 다른 집을 거쳐 2층이나 옥상으로 올라가거나, 불법적으로 철제 계단을 설치하였다. 다세대주택에서는 옥외 계단을 건축물 면적에서 제외하도록 해 각 가구들은 별도의 분리된 통행로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아울러 다세대주택은 북쪽 경계선만 건축물 높이의 절반에 해당하는 만큼 거리를 두되 나머지는 50㎝ 이상만 거리를 두면 되도록 규정을 완화시켰다. 이렇게 등장한 다세대주택, 통상적으로 말하는 빌라들은 도시의 모습을 바꿔놓았고 그것이 대한민국 도시를 상징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됐다.

그 당시 대한민국 도시의 상징
80년대 주택난 해소 결정적 역할

다세대주택 증가를 통해 많은 이에게 그 이전보다는 나은 주거 공간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많은 사람은 분당과 일산 같은 1기 신도시가 80년대의 주택난 해소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이런 다세대주택들이었다. 2020년 시점에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주거 공간이지만, 30년 전에는 훌륭하고 쾌적한 삶의 공간이었다. 수세식 화장실과 입식 부엌이 있고, 햇빛과 바람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던 국민소득 5000불 시절의 생활 공간이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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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대한민국의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춘,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서는 나라가 됐다. 빈부의 격차 심화가 심해지고 고령화와 저출산이라는 해결하기 힘든 과제에 직면하고 있지만 그래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부러워하는, 가고 싶고 살고 싶은 나라가 됐다. 그 가운데서도 서울은 세계적 대도시로 성장했다. 고층 아파트 기준은 15층에서 25층 이상으로 바뀌었고, 주차장과 황량한 콘크리트 건물만 있던 아파트 단지들은 이제 지하는 주차장, 지상은 차 없는 공원, 그리고 주민들끼리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갖추게 됐다. 국민소득 수준에 걸맞은 주거 공간으로서 사람들의 선호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현재 노후화로 생활여건 악화
시대에 맞게 주거여건 개선 필요

아파트 주변에 위치한 빌라와 다세대주택은 많은 경우 그대로 남아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승용차의 급속한 보급으로 인해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과 이면도로들은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관리 주체가 불분명함에 따라 다세대주택의 노후화는 빠르게 진행됐으며, 다세대주택들이 밀집한 곳일수록 일조권을 포함한 생활 여건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런 동네를 떠나 다른 곳의 아파트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러한 다세대주택의 증가에 따른 생활 여건의 악화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보도도,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공원도 존재하지 않고 빽빽하게 주택과 차량만 들어선 공간들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조용히 뒤편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주택들과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다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전면철거-재개발은 원래 거주하던 사람의 대부분이 그 지역을 떠나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도로 및 학교 등이 부족한 문제점을 낳았다.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재개발을 묶어 대규모로 만들고 공공 부문이 일정 부분 지원하는 뉴타운 방식의 개발은 중산층이 선호하는 훌륭한 거주 공간을 만들었지만 많은 시간과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이 됐다. 아파트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거주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됐다.

정이 넘치는 인간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주거 공간을 만들지는 못했다. 어정쩡한 상태에서 기존의 빌라들은 도시형생활주택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주거들로 대체되고 있다. 더 높은 용적률로 더 빽빽하게 들어서는 이런 주거 형태들은 지금의 주거와 관련된 문제를 잠시 뒤로 미룰 뿐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층고는 낮지만 용적률은 아파트와 비슷한, 여전히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과거의 주거 공간들을 어떻게 현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화시킬 것인지는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고 있다. 1980년대 현실을 인정하고 다세대주택을 허용한 것과 같은 과감함이 2020년 우리 앞에 놓인 숙제의 정답은 아닐까?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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