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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원팀 리더십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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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에 위치한 수원 사업장(생활가전사업부)을 찾을 당시 찍힌 사진 한 장이 뜬금없이 화제에 올랐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이 언론에 배포한 사진 속 이 부회장은 한껏 쭈그려 앉아 세탁기 내부를 살피며 경영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영 환경이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흔들리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자. 우리가 먼저 미래에 도착하자"는 이 부회장의 현장 발언과 함께 사진은 언론을 통해 비중 있게 노출됐다. 10대 그룹에서 오너 일가의 의전만 십수 년 담당한 한 고위 임원은 "총수가 현장 경영 시 무릎을 굽혀 웅크리고 앉는 경우도 드물지만 사진을 활용하는 것도 이례적"이라면서 "통상 사장단과 자연스럽게 걷거나 안전모를 쓰고 지휘하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급하긴 급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관전평을 했다. 요즘 이 동네에서는 셋만 모이면 이 부회장 이야기를 하는, 일상이 일상이 아닌 때라 예민하게 비쳤을 수도 있겠다.


비단 이 부회장의 삼성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재계가 온통 뒤숭숭하다.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력이 없다. 오너를 둘러싼 사법 리스크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어렵거나 승계와 맞물린 형제·자매 간 경영권 분쟁으로 살얼음판 위를 걷거나 미래 먹거리를 두고 경쟁사 간 제 살 깎기 소송전도 난무한다.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하는가 하면 일본의 2차 경제 보복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이쯤에서 옛날 이야기 하나. 때는 11년 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가 열린 날이다. 100여명의 취재진을 피해 엘리베이터에 겨우 몸을 실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밀착 마크하던 한 여기자가 말을 건넸다. "회장님, 저 천안 북일고 출신 땡땡땡경제의 땡땡땡인데요. 대우인터내셔널 등 인수합병(M&A) 검토하시나요?" 굳은 표정으로 눈길 한 번 안 주던 김 회장은 '북일인'에 반색하며 몇 마디를 들려줬고 기사화가 됐다.


언젠가는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경제계 보육 시설 건립 사업 '보듬이 나눔이 어린이집' 착공식에 참석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직접 물었다. 당시는 하이닉스반도체가 M&A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다. 효성은 유력 인수 후보군이었다.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냐"는 물음에 조 회장이 씨익 웃으며 "하이닉스가 뭔데요? 공짜로 주면 갖죠"라고 답한 기억이 생생하다. 결과적으로 하이닉스는 SK그룹의 품에 안겼지만, 조 회장과 만난 한 달 뒤 효성이 단독으로 하이닉스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공식 자리에 모습을 덜 드러내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나타났다 하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정부의 경제 정책에 점수를 매겨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흡족한 것은 아니지만 낙제는 아니다"고 하는가 하면 이익공유제에 대한 견해를 묻자 얼굴을 찡그리면서 "도대체 경제학 책에서 배우지 못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재계의 불편한 입장을 앞장서 대변한 적도 있다.

시시콜콜하게 총수 인물평이나 하자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전경련의 역할론을 부각하거나 문재인 정부 들어 패싱 논란에 휩싸인 전경련을 위한 구명 의도는 더욱 아니다. 오너나 기업인이 대중과 소통할 창구가 점점 사라지는 답답한 재계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구심점 역할을 자처할 어른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무한경쟁 시대의 각개전투 속에서도 대한민국 재계가 한 몸으로 뭉쳐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원팀 리더십을 기대하는 건 난망일까. 청와대가 아닌, 평양 옥류관도 아닌, 승지원 같은 장소에서 경제계가 정기적으로 회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그림 같다.


김혜원 산업부 차장 kimhye@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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