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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 잊힌 전원공업도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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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의 도시순례] 잊힌 전원공업도시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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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지방자치단체들은 모두들 기업의 유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기업의 유치는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도시와 지역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다양한 업종의 수많은 기업들이 있겠지만 만약 선택의 권한이 있다면 다들 어떤 업종을 유치하려고 할까? 아마도 자동차 공장을 유치하는 것이 최고의 꿈이 아닐까 싶다. 과거에 비해 많이 자동화 되었지만 여전히 조립라인의 대규모 고용을 필요로 하고 관련 부품 및 소재 관련 업체들 역시 자동차 최종 조립라인 근처에 입주해야하기 때문에 고용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美 디트로이트, 빅3 공장 몰려있던 자동차산업의 상징
1970년대 공장 이전과 수입차 공세에 도시 몰락의 길

자동차와 관련된 도시로서 대표적인 곳은 미국의 디트로이트이다. 디트로이트는 미국의 GM, 포드 및 크라이슬러로 대표되는 빅3의 공장이 있던 곳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영광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1970년대 이후 공장들의 남부 및 해외이전, 일본차를 비롯한 수입자동차의 공세로 인해 디트로이트는 어려움을 겪고 결국 도시황폐화와 부도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는 사실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1908년 세계 최초의 콘크리트 포장 자동차 도로를 건설할 정도로 앞서나가던 도시의 몰락은 특정 산업과 기업에 대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디트로이트가 자동차 '산업'에 의존하던 도시였다면 독일의 볼프스부르크는 폭스바겐이라는 자동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아니 폭스바겐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볼프스부르크는 히틀러가 포르쉐 박사가 제안한 '일반 대중을 위한 저렴한 자동차'라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면서 이것을 생산하기 위한 곳으로 만들어졌다. 폭스바겐 공장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정식 지명도 없던 이곳을 히틀러와 포르쉐는 항공사진을 통해 공장건설지역으로 선정했는데 독일의 중앙부에 위치해서 어디에서나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자동차를 주문한 사람들은 공장까지 가서 차를 받아와야 했기 때문에 모든 곳에서 접근이 편리한 곳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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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벌판에 연간 8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들은 어디에서 지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당시 공장건설을 추진하던 히틀러의 해결책은 간단하면 야심찼다. 자동차 공장과 더불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계획된 도시를 만드는 것이었다.


건축가 피터 콜러가 이 도시를 설계하도록 임명됐고, 나중에 나치 독일의 군수상을 지내게 되는 알베르트 슈페어가 전체 개발을 책임지는 감독관으로 임명됐다. 1933년 설계안은 4개의 팔과 2개의 원형 고리로 이루어진 도시는 최소 3만 명에서 최대 40만 명에 이르는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구성돼 공장의 생산능력 확장에 따라 대처할 수 있도록 작성됐다. 공장과 주택은 인접한 곳에 있어 편리한 통근을 가능하도록 했다. 도시의 한 가운데에는 정치활동 및 문화공간으로 활용되는 건물들의 콤플렉스가 자리 잡을 예정이었다. 시내로 진입하는 도로는 미래에 자동차 보급에 따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량의 교통량을 처리하도록 설계됐으며 그 가운데 일부는 최대 폭 100m에 이르기도 했다.

폭스바겐만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 '獨 볼프스부르크'
연간 100만대 생산, 시 예산 '3분의 1' 폭스바겐이 납세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주택가에는 대규모의 녹지공간이 조성될 예정이었으며, 국가사회주의 정신에 입각한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모든 주거지들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중앙난방과 수세식 화장실, 중앙세탁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모든 주택들은 자체적인 정원을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구상은 우수한 노동자들을 낯설고 새로운 도시로 유인하기 위한 구상에 따라 도입됐다.


도시와 공장을 건설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노동자의 돈으로 충당됐다. 히틀러의 집권 이후 독일의 노조는 어용 노동조직인 DAF로 통합되는데 이때 당초 독일 금속노조가 보유하고 있던 5000만 마르크의 기금 역시 DAF로 넘어가게 됐고, 당시 독일 정부는 이를 활용해 공장 및 도시건설에 나서게 됐다.뛰어난 구상과 계획이었지만 1938년이 돼서야 공사에 착공했기 때문에 곧이어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전체 계획되었던 면적의 10분의 1만 조성될 수 있었다.


독일의 패전 이후 이 지역을 점령한 영국군은 공장을 재건해 가동하는 것이 군정을 담당하는 영국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라 판단하고 자금지원은 물론 생산되는 차량을 구매해주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폭스바겐은 전후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게 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볼프스부르크의 인구는 1950년대 초반 2만5000명에서 12만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곳의 폭스바겐 공장은 7만2000명을 고용하면서 연간 100만대 가까운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볼프스부르크 시 예산의 3분의1은 폭스바겐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충당되며, 폭스바겐이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볼프스부르크는 1인당 평균 소득이 10만달러에 육박하는,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성장하게 됐다. 대규모 공장과 도시를 함께 건설한다는 계획은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창원과 안산을 통해 시도됐다. 단순히 공장에 일할 사람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개념을 뛰어넘어 쾌적하고 안락한 도시를 만든다는 목표 하에 충분한 녹지와 미래를 염두에 둔 도로망과 통신망,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는 교육기관 등을 배치하고 주거지역과 공업지역 주변에 충분한 공원과 녹지를 두는 '전원공업도시'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韓, 창원·안산에 시도했던 산업·결합 자족형 신도시
베드타운 신도시 문제 해결 위해 다시 시도해볼만

그러나 당시 국가 역량은 이러한 투자를 감당하기 어려웠으며, 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따라 사업이 지연되었고 결국 1980년대 초반 이러한 산업현장과 결합된 신도시는 향후 건설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후 신도시들은 모두 베드타운 형태로 건설됐으며, 이는 교통망을 비롯한 많은 문제점을 초래했다. 최근에는 자족형 신도시를 표방하게 되었으나 주거를 우선하는 형태의 신도시로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우리는 볼프스부르크와 같은 산업과 결합된 도시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우리가 과거에 비슷한 시도를 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이제라도 산업과 결합된 계획도시의 꿈을 다시 추구해볼 때가 됐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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