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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딸깍발이]한국 철학은 슬픔 속에서 생명을 가진다 더불어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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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어로 고민 해결, 민중이 철학의 주체
함석헌·류영모·문익환·장일순 등 철학사 줄기
슬픔에 공감하는 철학을 강조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남의 변두리에서 남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남의 허락을 구하는 이에게 철학은 없다."


철학자 유대칠은 이 땅의 새로운 철학사 세우기를 시도했다. 중국이나 서양으로부터 수입된 철학이 아닌 우리 자신의 철학 역사를 소개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노력은 이전의 한국 철학사를 소개하는 방법과 크게 두 가지가 다르다. 첫째, 그는 '대한민국 철학사'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철학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든다. 유대칠은 "과거의 철학은 모두 이 땅에 있었던 철학일 뿐"이라며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효한 철학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대한민국 철학사'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조선시대와 선을 그었다. 여기에는 아주 오래된 사유가 오늘날 우리의 철학적 사유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는 단순한 판단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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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역사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존재한다. 이는 바로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과거의 철학이 지배자를 위한 철학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철학사에서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의 철학은 백정과 기생 그리고 노비의 고난을 몰랐다. 그들의 눈물 앞에서 아무 감정 없는 차가운 논리였다. 고난의 주체인 민중이 철학의 주체가 되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유대칠은 과거 이 땅의 철학이 이 땅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 삶의 고민과 거리를 둬 '철학다운 철학'이 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조선시대 동아시아 일대까지 영향력이 닿은 조선 성리학조차 백성을 교화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실패'로 규정했다.


둘째, 저자가 대학 강단으로 상징되는 제도권 철학 역시 우리의 철학일 수 있을까 의구심을 던졌다는 점이다.


"스스로의 철학을 궁리하지 않고 기적을 행하는 나의 밖 외물이 찾아와 해결해줄 것을 기다리는 게으름뱅이에게 철학의 자리는 없다. 힘들어도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힘들어도 자기 답으로, 자기 철학으로 살아야 한다."


저자는 외국의 철학을 소개하는 기존 풍토에 대한 거부감도 드러냈다. 외래 철학을 단순히 번역하는 것에 그친다면 이 땅에서 사람들의 삶과 거리를 좁힐 수 없다. 그는 "남을 배척하지도 않지만 나를 스스로 포기하지도 않는 그 자리에서 우리가 살아가듯이 우리의 철학도 그래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래 철학이 영감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철학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언어로 우리의 고민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함석헌, 류영모, 문익환, 장일순, 권정생, 윤동주를 대한민국 철학사의 줄기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대학 강단에 섰던 이들이 가르친 철학이나 한국 전통을 강조한 제도권 철학은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저자는 대한민국 철학이 가져야 할 지향점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슬픔에 대해 공감을 나타낼 수 있는, '더불어' 함께 하는 철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은 고난 속 너를 통해 나를 보며 우리를 이룬 이들의 잡은 손을 더욱 단단히 해줄 이론을 내어놓아야 했다. 우리가 된 이들의 잡은 손을 놓지 않게 하는 이론을 내어놓아야 했다. 한국 철학은 이들의 아픔 앞에서 더욱 깊어져야 했다. 철학은 슬픔 속에서 생명을 가진다."


그는 슬픔이 철학을 더욱 철학답게 하고, 공감의 장을 만들 수 있게 한다고 강조한다. 부조리한 공간 속에서 함께 분노하고, 또 웃는 철학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철학이 조선시대 어느 특정 분기점에서 시작됐다는 주장도 제시했다. 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한 정약종(1760~1801)이 한글로 '주교요지(한자를 모르는 신도를 위해 우리말로 쓴 천주교 교리서)'를 썼을 때가 대한민국 철학의 태동 시점이라는 것이다.


당시 '주교요지'는 조선 민중의 처지에 맞게 정리돼 유럽 선교사의 책과 달랐다. 저자는 이를 두고 대한민국 철학의 '회임(懷妊)'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최제우(1824~1864)가 동학사상이 집대성된 '용담유사'를 쓰면서 한국 철학은 비로소 '출산'한 것으로 봤다.


저자는 대한민국 철학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초월적 외부를 지향하기보다 우리 안에 있다는 점을 꼽았다. '나'다운 내가 되기 위해, 나를 긍정하고 내 안에서 내적인 초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서학은 나의 밖에 있는 천주 하느님에게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최제우의 동학은 내 안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점이 다르다.


대한민국의 철학은 3ㆍ1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을 거치면서 발전했다. 저자는 이 시기를 살다간 이 땅의 주요 사상가 6인의 사유에 대해 소개하며 새로운 한국 철학사 세우기도 시도한다. 그러나 시인과 종교인, 동화작가 등의 사상이 대한민국 철학의 줄기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했는지는 의문이다. 함석헌을 제외하면 다른 사상가들의 철학 역시 충분히 다뤄졌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저자가 전하려는 '뜻'이 너무 강하다 보니 600쪽 분량의 책이 동어반복의 느낌을 줬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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