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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픈 일을 하는 것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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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생계수단 이상 의미…일하지 않는 삶은 권태의 연속
건물 임대료 받으며 편하게 살고싶은 젊은이는 행복할까?
성공·쾌락 추구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진화는 없었을 것

이용범 소설가

이용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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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멕시코시티의 시장 한구석에 앉아 매일 스무 다발의 양파를 파는 노인이 있었다. 한 미국인이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전부 사면 얼마를 깎아주겠소?" 노인이 답했다. "전부는 팔지 않습니다." "안 판다고? 당신은 갖고 나온 양파를 팔기 위해 여기 있는 것 아니오?" 미국인의 화를 내며 묻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하고,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겁습니다. 그게 내 인생이지요. 양파를 전부 팔아버리고 나면 내 하루는 끝이 납니다."


#1. 왜 일하는가

이 이야기는 미국 박물학자 어니스트 시턴(1860~1946)의 '인디언의 복음'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한 가지 교훈이 담겨 있다. 우리가 단지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999년 미국의 한 연구진이 대학생 138명에게 향후 두 가지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해달라고 요청했다. 하나는 주변의 권유 때문에 선택한 직업으로 처음 몇 년 동안 고생스럽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망이 매우 밝다. 다른 하나는 늘 하고 싶어했던 일이지만 수입이 적다. 그러나 만족도가 높고 인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당신은 주저 없이 하고 싶었던 일을 택할 것이다. 실험에서 66%의 학생이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선택했다.


연구진은 질문을 바꿔봤다. 그럼 친구에게는 어떤 직업을 권하겠는가. 이번에는 83%가 하고 싶었던 일을 선택했다. 그들은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17%의 학생은 주변의 기대와 시선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대신 자신의 행복보다 친구의 행복을 원했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일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땅 위의 물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시키는 일이다. 대다수 사람은 남에게 시키는 일을 선호한다. 노동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고역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은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장 행복한 이는 하고 싶은 일, 잘 할 수 있는 일, 해야만 하는 일이 같고 실제 그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다수는 생계 해결 차원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취업하고 나면 원하지 않는 일이라도 할 수밖에 없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행복해지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Should) 일'을 '하고 싶은(Want to) 일'로 바꿔야 한다.


#2. 건물주가 되고 싶은 청년들


흔히들 돈만 있으면 당장 직장을 때려치우겠다고 말한다. 건물 임대료를 받으며 편하게 살고 싶다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정말 일을 하지 않으면 행복할까.


행복한 삶은 일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이다. 실업자는 자기 의지대로 일을 선택할 수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삶은 권태의 연속일 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은 무기력한 삶이다.


우리는 대단한 대가를 바라면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 우리는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동기에도 편안함을 포기하고 행동으로 나선다.


2010년 미국 시카고대학 연구진은 대학생들에게 간단한 설문조사 후 옆 사무실 혹은 걸어서 15분 걸리는 곳 가운데 한 곳에 설문지를 제출하도록 주문했다. 다만 먼 곳에 제출하면 사탕을 기념품으로 받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러자 먼 곳을 택한 학생이 크게 늘었다.


행동해야 할 이유가 생기면 우리는 과감하게 게으름과 결별한다. 우리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일이 싫어서라기보다 일할 이유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성취를 느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존재(be)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live)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한때 일본에서 '달관세대(さとり世代)'라는 말이 유행한 바 있다. 높은 실업률 때문에 희망을 잃고 무기력해진 청년세대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사회의 많은 젊은이가 이들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들은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희망을 포기한 것에 가깝다.


독방에서 소소한 삶에 만족하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저버린 지독한 이기주의일 수도 있다. 그것은 달관이 아니라 삶의 실패다. 몇몇 행복전도사는 욕심을 버리고 사소한 행복을 찾아 나서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인류가 성공과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공룡 화석 위에 초라한 몸집의 화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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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삶은 지루하다. 성서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를 상상해보라. 영원히 에덴의 정원만 바라보는 삶은 행복하지 않다. 우리는 선악과를 먹은 죄의 대가로 수고로운 일을 떠맡긴 신의 저주에 감사해야 한다.


인간만큼 부산 떨어야 존재감을 갖는 동물이 어디 있겠는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 작가 윌리엄 포크너(1897~1962)의 말처럼 '사람은 하루 여덟 시간 동안 먹을 수 없고, 하루 여덟 시간 동안 마실 수 없으며, 하루 여덟 시간 동안 사랑을 나눌 수도 없다. 여덟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일뿐이다'.


에덴이 존재해도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인간은 살기 위해 땀 흘려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우리는 단순히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더 우아하게 먹기 위해 일한다. 인간이 행복의 쳇바퀴를 굴리며 부질없이 앞으로 나가려 애쓰는 것은 탐욕을 통해 살아남은 조상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3. 의미의 재발견


미국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일을 생업(job), 직업(career), 소명(calling)으로 구분한 바 있다. 생업이 생계를 위한 것이라면 소명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의미 있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열정을 발화시키는 힘은 행위의 이유, 다시 말해 의미다.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더 행복하다. 병원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러 연구 결과 환자의 회복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병원의 청소원들이 더 행복했다. 심지어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나 간호사보다 더 큰 보람을 느꼈다.


게다가 가족 대신 환자의 임종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간호사들은 환자의 뒤치다꺼리나 한다고 생각하는 다른 간호사나 의사보다 더 행복했다. 행복한 사람은 좋은 직업을 가진 이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에게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루 여덟 시간 이상 철사를 자르는 사람에게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기가 하는 일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면 일에서 의미는 찾기 어렵다. 철사 자르는 사람은 자신이 자른 철사가 스프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스프링이 어떤 제품의 부속품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 노역일 뿐이다.


2012년 미국 하버드대학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그리고 이들에게 레고 장난감을 조립하도록 주문한 뒤 일정 금액까지 지급했다. 그리고 한 그룹이 조립된 장난감을 가져오자마자 곧 분해해 박스에 넣어버렸다. 그러자 이들은 곧 의욕을 상실했다.


대조군은 평균 10.6개 조립에 14.40달러를 받았다. 그러나 의욕을 잃은 그룹은 평균 7.2개 조립에 받은 금액이 겨우 11.52달러였다.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일에서는 의욕이든 즐거움이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은 수백만 년 동안 삶과 일이 통합된 세계에서 살았다. 일을 힘든 노동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정해진 규범에 따라 일하는 것이 익숙지 않다.


일이 고통으로 바뀌지 않게 하려면 하는 일에서 의미를 재발견해야 한다.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이는 일에 임하는 태도를 좌우한다.


깊이 1.5m의 구덩이는 누구나 팔 수 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구덩이는 아무나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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