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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어떤 행복론

최종수정 2019.08.07 12:00 기사입력 2019.08.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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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어떤 행복론

아이 문제로 휴직한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전문적 영역에서 애정을 갖고 열심히 헌신한 일터였다.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팍팍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어떤 도전도 성실과 인내로 이겨내던 친구는,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잘 못하면서 문제를 일으키자 더는 버텨내지 못했다. 그간 고비가 있을 때마다 '잘 버텨 봐'라고 주문을 하곤 했던 나도 이번에는 다른 답을 찾지 못했다.


엄마이자 아내, 며느리, 딸, 직장에서의 책임까지 합치면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여성은 매일 아슬아슬한 외줄을 탄다. 도저히 소화하기 힘든 업무량을 동시다발로 해치우면서 냉장고 속에 뭐가 있는지, 사춘기 아이의 핸드폰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다가, 썩어 진물 나는 야채를 뒤늦게 보면서, 또 징후를 놓친 아이의 문제를 대면하면서 가슴을 친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는데 어디서 뭐가 잘못되었지? 그동안 당차게 직장과 가정을 병행했던 여성은 자책과 후회, 번민에 휩싸인다.


특히 여성은 다른 어떤 것보다 자녀 문제 앞에서 죄인이 된다. 엄마여서다. 어수선할 친구에게 마음 다잡아 차분하게 해야 할 일만 생각하라고, 먼 계획보다 당장 눈앞의 3개월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하라고 당부했다. 일터로 다시 돌아갈 때는 모든 게 더 좋아져 있을 거라고, 지금까지도 잘 해왔고 지금 선택이 최선이라고 격려하며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얼마 전 아버지께서 일출을 보며 느낀 감회를 말씀하신 대목이다.


"은귀야, 행복이 무엇인고 생각하니 믿음이 행복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어김없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시며 믿음을 생각했다 하신다. 눈앞에 닥친 불행 앞에서 우리는 대개 탄식하며 허둥대기만 한다. 할 일은 넋 놓고 미루고 막연히 잘 되리란 거짓 믿음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기도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믿음을 갖되 이를 위해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짚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믿음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반성과 긍정 모두를 포함한다. 수고로이 한 일에 대해서는 인정해주고 모자란 부분은 또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걸 채워나갈 계획을 세우는 것. 그 안에서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할 힘이 생긴다.


매일 반복되는 사건사고 앞에서 쉽게 마음이 졸아 드는 우리다. 잘 견디다가 어떤 일에서 무릎이 탁 꺾이면서 더는 나아가지 못하는 약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하루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일은 아침 해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크고 변함없는 믿음 속에 있다. 큰 믿음으로 바라보되 당장 해야 할 일은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구체성 속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믿는다는 것은 그래서 어떤 마음의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그 훈련은 매일의 우리 일상에서 거듭 반복되기에 힘을 갖는다.

해야 할 일을 가늠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또 우리 안에 잠재된 힘을 믿는 것. 크고 작은 개인의 고난과 국가적 시련이 불가항력처럼 밀려드는 때, 그럴수록 더욱 간결한 삶의 원칙들을 새겨 본다. 밀려온 파고는 어쩔 수 없더라도 행복과 불행은 많은 부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발적 영역 안에 달려 있다. 어떤 가치를 믿는가, 어떤 행위를 통해 그를 실천하는가, 이를 묻고 답하는 오늘, 위기를 기회로, 절망을 희망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변화는 이미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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