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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매헌 윤봉길은 교육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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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본 주재원으로 일하던 시절, 지인의 딸이 쓴 글이 화제가 됐다. 소녀는 자신이 다니던 도쿄의 명문 여학교에 '나는 윤봉길의 후손이다'란 제목으로 작문을 냈다. 직장 일로 일본에 머무르던 소녀의 아버지는 말렸지만, 소녀는 의사의 후손답게 굽힘없이 그 글을 제출했다. 이국 여중생의 도발 아닌 도발에 학교의 대응이 궁금했다. 결론은 그 글로 소녀는 학교장 상까지 받았다 했다. 묘한 느낌이었다. 가해자의 여유일지, 교육적이라 해야 할지, 명문교라서 그런지, 또 우리의 학교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말, 충남 예산의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다녀왔다. 윤 의사는 '의협심이 강한 테러리스트나 의혈 청년으로 생각하기 쉽다'란 자료의 글귀가 눈에 띄었다. 상하이 홍커우공원의 의거 전, 선서문을 가슴에 두르고 수류탄과 권총을 양손에 쥔 강한 눈빛은 누가 봐도 무장투사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조금 달리 본 그는 교육자였다. 무장봉기의 계기도 '토끼와 여우'라는 이솝우화를 각색한 연극을 야학 무대에 올렸던 데 있었다. 여우가 빵을 토끼와 거북에게 나눠 주고 한쪽이 더 크다는 이유로, 이 쪽 저 쪽 번갈아, 결국 여우가 다 먹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로 일제에 쫓기면서, 그는 대의를 위해 중국 망명의 길을 택하고, 이어진 여러 인연과 결의 속에 의거를 결행했다.

그의 교육자적 소양은 농촌운동의 출발점에서 드러난다. 스무 살을 바라보던 그가 5년간 수학했던 '오치서숙'을 마치고 오는 길의 일이었다. 한 사내가 부모의 묘표를 찾아 달라고, 공동묘지 묘표를 죄다 뽑아온 것을 보고 그는 "아, 이 청년은 무식으로 부모의 무덤을 잃었고, 이 겨레는 무식으로 나라를 잃었구나!"라는 탄식과 함께 농촌 계몽운동에 나서게 되었다.


중농 출신인 그가 농촌교육에 주력했던 일은 야학을 설치해 문맹을 퇴치하고, 농사일과 농민의 교양을 높이는 일로 '농민독본'을 발간하는 교육 사업이 중심이었다. 또한 '부흥원'을 만들어 유휴지 개간과 공동 양돈, 고구마의 온상 재배와 같은 근대 농법을 접목했다. 한편 '월진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농촌 계몽과 교육사업을 관장토록 했다.


교육자로 그를 바라보면 그의 여러 스승들이 보인다. 오치서숙의 스승 성주록은 그의 사상을 키웠다. 쇠락한 가문의 재건을 위해 농지 개간에 몰두해 '땅두더지'란 별명까지 얻었던 조부에게서는 근면과 강직을 배웠다. 부친은 그의 말 없는 후원자였고, 모친은 말을 더듬던 어린 봉길을 밤낮으로 도와 바로잡았다. 서당의 훈장이었던 백부는 회초리를 들어 그를 깨쳤다. 하지만 그를 교육자로서 주목하고 싶은 진정한 이유는 나라를 빼앗긴 원인을 무지와 무식이라는 내적 요인에서 찾았으며, 교육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고, 농촌계몽을 신농법이라는 실용과 함께 의식개혁도 추진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필생의 목표를 높여 세워 끝내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업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한 세기 전 인물이자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순국한 그가 오늘의 교육에 던지는 교훈 또한 경이롭다. 하나는 그 이른 시기, 체육교육을 위해 자신의 임야를 태워 운동장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의거 전, 유언처럼 남긴 편지에 "부모는 자식의 소유주가 아니요, 아이들은 맹자와 나폴레옹, 에디슨을 본받아야 한다"고 한 대목이다. 나는 그에게서 훗날 부모들의 과잉교육을 경계하고 교육에 대해 전인을 넘어 융합교육까지 내다본 안목을 발견한다. 올해는 3ㆍ1운동 100주년이다. 그리고 이달 하순이면 매헌의 탄생 만 110주년이 도래한다. 우리가 역사와 과거에서 무엇을 얻어야 할지, 매헌의 교육자적 삶에서 다시 짚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공교롭게 예의 윤씨 소녀는 금년 봄, 일본 명문대학의 석사를 마치고 누구나 바라는 일본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입사했단다. 이 또한 묘한 느낌이다.


임호순 충남삼성학원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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