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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약팽소선(若烹小鮮)과 국가라는 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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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治大國, 若烹小鮮).


노자 '도덕경' 제60장 치대국(治大國)에 나오는 첫 글귀이다. 교수신문도 한때 올해의 소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발표한 적도 있고 해서 비교적 널리 알려진 말이다. 여기서 글자 하나 비틀고 재해석할 만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마침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깊은 울림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바로 팽(烹)이라는 한 글자다. 한자 옥편을 보면 삶는다거나 삶아 익힌다는 말이 주로 나오기 때문에 도덕경의 이 문장을 한글로 번역한 표현은 죄다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고만 돼있다. 노자ㆍ장자 사상을 연구한 철학자도 그러하고 한문에 통달한 언어학자도 역사학자도 한국말로라면 으레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삶는 조리 행위만을 연상해왔다.


그러다 보니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살이 뭉그러지기 쉬운 작은 생선을 삶는 것과 같아서, 빨리 익히려고 자주 뒤적거리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가만히 두면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정치"라는 뜻으로 새겨오곤 했다. 그러니 대통령도 장관도 담당 일꾼 관료들도 작은 생선 하나 삶듯이 불 위에 올려놓고 그저 지켜보라는 알쏭달쏭한 교훈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한데 이 오랜 붙박이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 이가 나타났다. 글자 하나 디테일로 들어가 달리 보고 기어이 한국말로 풀어 새 번역을 완수한 이가 있어 새삼스럽게 깊은 생각을 할 기회를 던져주고 있다. 국가 운영, 기업 경영은 물론 자기 관리까지 꿰뚫는 신개념 약팽소선(若烹小鮮)을 일깨워주고 있다.

괴짜 주인공은 바로 한국 벤처 창업 1세대 기업인 남민우 다산네트워크 회장이다. 그는 1년에 걸친 노력 끝에 지난 3월 도덕경 한글역과 영역 본을 내놓으면서 "제가 스스로 느낀 도덕경의 내용은 우리 사회의 가진 자, 있는 자, 짐진 자들에게 특히 유용한 울림이 있는 마음의 수양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본래 의미 문자인 한자를 우리말로 번역해 그 뜻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여겨 나름대로 새로운 해석과 표현에 도전했노라는 설명이다.


가령 약팽소선(若烹小鮮)의 경우 실제 노자가 살았던 기원전 500년 전 중국 사람들의 섭생 음식 문화까지 남 회장은 추적해봤다. 항상 시장 조사, 수요 파악을 위해 실전 리서치를 해왔던 기업가이기에 문헌에 충실한 학자들과는 좀 다른 접근을 선택했다. 그 결과 당시 중국인들은 철제와 같은 냄비 그릇 없이 작은 생선을 그냥 꼬치에 끼워 화덕 불에 돌려가며 구워먹었을 거라는 가설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팽(烹)은 고대 중국에서 불에 익혀 구워 먹는 그림이 되고 이에 따라 한쪽 면이 너무 타지도 않게 적절하게 꼬챙이를 돌려가며 고루 고루 익혀 먹기 좋게 다루어야 한다는 풀이로 바뀌게 된다.


해서 약팽소선(若烹小鮮)은 "작은 생선을 굽는 일과 같다"로 한글역이 되고 영어로는 "Ruling a big country seems like cooking a small fish"가 된다. 그저 내버려두어도 좋은 삶는 쿠킹이 아닌 조금은 챙기고 거들어야 하는 굽는 쿠킹으로 돌린 디테일의 집념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디테일에 강한 남테일 남민우 번역가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실제로 남 회장은 이렇데 덧붙인다. "노자가 국가 경영에서 약팽소선(若烹小鮮)을 말한 참뜻은 자율이었다고 봐요. 배고픈 사람들이 생선 구워 먹을 때 저마다 불가에 앉아 알아서 먹고 싶은 대로 정성껏 굽는 상황을 표현해준 겁니다. 생선 굽는 일을 각자 자율에 맡겨두고 믿어보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


국가뿐이랴. 어느 조직도 사회도 가정도, 심지어는 일개 개인도 약팽소선(若烹小鮮) 말 그대로 잘 먹어야 하는 중요한 일에 부합하게끔 섬세하고도 진지하게 기술과 지식, 요령을 항상 제대로 발휘해 스스로 해결해내야 한다는 깊고도 풍부한 메시지를 얻게 된다.

수십 년 청춘을 다해 IT, 디지털 세상에서 격전을 치러온 남 회장이 이 간단한 번역에 힘준 고정관념 탈피라는 몸짓 하나가 주는 무게감은 결코 만만치 않다. 노자가 전해준 무위자연의 도를 실천해 덕을 쌓는다는 가르침은 나랏일에도 기업 일에도 개인사에도 두루 두루 큰 지침으로 받아들여야 할 큰 선물이다.


영어로는 Tao(도)가 nothing, non being, non doing과 맞닿아 있는 참 어려운 뜻이기도 하다. 예컨대 최고경영자(CEO)같은 리더가 선한 영향력(virtuous influence)을 준다는 것은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nothing) 과다한 말을 하지 않고, 존재 자체가 없다시피(non being) 할 정도로 나서거나 드러내지 않고, 섣부른 탐욕은 최소한으로 줄이는(non doing) 수양으로서만 가능하다는 삶의 귀한 지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 한국문화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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