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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죽음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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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인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배드민턴을 치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접합 수술 후 요양 중인 그는 내게 "지금까지 너무 자족하며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골똘히 사후의 세계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간 살아 있음에 취하여, 이리저리 즐거움에 시간을 나누면서도 정작 자신이 죽고 난 후에 어찌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심했다는 반성과 함께. 나도 몇 해 전 발목뼈가 부러져 여러 달 꼼짝달싹 못 하는 신세가 됐을 때 새삼 나 자신을 곱씹어보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던지라 그의 말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왔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수명이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영생의 존재가 아닌 한 하루를 살았다는 것은 곧 죽음에 하루만큼 더 다가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 된다. 이렇게 보면 삶과 죽음은 확연하게 구별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그래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불가(佛家)에서는 '네 지난날을 알고 싶거든, 네가 현재 처해 있는 것을 보라. 네 미래가 궁금하거든 네가 현재 행하고 있는 것을 보라'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포클레스는 '명성을 떨쳤던 사람도 죽고 나면 이렇게도 빨리 잊히는 것일까'라고 애통해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끔 죽음에 대하여 생각을 돌려라. 그리고 머잖아 죽을 것이라 생각하라.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그대가 아무리 깊이 번민할 때라도, 밤이면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번민은 곧 해결될 것이다. 그리하여 의무란 무엇인가, 인간의 소원이란 어떤 것이라야 할 것인가가 곧 명백해질 것이다.'


미셸 몽테뉴도 그의 저서 '수상록'에서 '어디서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나 곳곳에서 기다리지 않겠는가. 죽음을 예측하는 것은 자유를 예측하는 일이다. 죽음을 배운 자는 굴종을 잊고, 죽음의 깨달음은 온갖 예속과 구속에서 우리를 해방한다'라고 했다.

사실 죽음은 어디서든 맞닥뜨릴 수 있다. 지난날 주로 전쟁과 질병이 죽음을 부르는 원인이었던 것에 더해 오늘날에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사고가 빈번하게 죽음의 초대장이 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죽음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던 지난날과 달리 오늘날에는 '믿을 수 없는' '갑작스러운' '애석한' 죽음들이 늘어 가뜩이나 죽음에 대비가 돼 있지 않은 우리의 삶을 휘저어놓는 경우가 많아졌다. 더욱이 불의의 사고는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들을 양산해 행복했던 가정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을 안겨준다.


산 자의 고통은 더 이상 망자와 함께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한다.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상실감이 때로는 회한과 죄책감으로, 때로는 그리움과 보고픔으로 이어지며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갑작스레 떠나보낸 유족들이 어떤 말로도 위안을 받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에 자신을 매몰시키지 말고 이따금 우리의 의식에 죽음을 소환해보자. 나도, 너도, 우리도,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음을 상기해보자. 삶 속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의 다른 말이 곧 죽음임을 인식한다면 자신의 죽음도,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에 가장 빛나는 시간은 '지금'이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6월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장렬히 목숨을 바친 많은 영령과 이국 만리 다뉴브강에서 잠들어버린 우리 여행객들의 명복을 빈다.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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