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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유별났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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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지난해까지 2년간 문화부에서 일했던 관성이 남아 있어 최근에도 종종 대학로를 간다. 지난달 본 연극 중 하나가 '유리동물원'이다.


유리동물원은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의 출세작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유명한 윌리엄스는 두 차례 퓰리처상을 받았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은 넷. 엄마 '아만다', 딸 '로라', 아들 '톰', 그리고 톰의 학교 친구이자 현재 직장 동료인 '짐'.


톰은 등장인물이자 극의 해설자다. 극은 톰의 해설로 시작한다. 극의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톰의 표현이 흥미롭다. '유별났던 1930년대'.


극은 대공황(1929~1933년) 이후 미국의 한 가정의 일상을 보여준다. 엄마는 화려했던 젊은 시절의 기억만 떠올리고, 누나는 다리를 절뚝이는 탓에 세상에 나가지 않는다. 톰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대공황 이후 황폐한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여유가 없는 소시민 가정의 모습이다. 아만다, 로라, 톰 모두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선한 사람들이지만 황폐한 사회·경제적 상황은 부지불식간에 이들을 짓누른다.

유리동물원 공연 사진  [사진 제공= 극공작소 마방진]

유리동물원 공연 사진 [사진 제공= 극공작소 마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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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살았던 시대가 얼마나 황폐했을 지는 다우지수 흐름으로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1929년 9월3일 다우 지수는 381.17로 거래를 마쳐 사상최고가를 기록했다. 한 달 여 뒤 다우 지수는 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10월28일 12.82%, 10월29일 11.73% 폭락하면서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다우 지수는 1932년 7월8일 대공황 이후 사상최저가(종가 기준)를 기록했다. 41.22. 다우지수가 처음 거래된 1896년 5월26일의 종가(40.96)까지 밀린 셈이다.


요컨대 다우 지수는 1896년부터 1929년까지 33년에 걸쳐 쌓은 공든 탑을 약 3년에 걸쳐 무너뜨린 셈이다. 400을 바라보던 주가가 40으로 추락했을 때 사람들이 느낀 좌절감은 어땠을까.


윌리엄스는 그런 황폐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조그마한 균열로 한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따지고 보면 엄마, 아들, 딸의 식사 장면이 반복될 뿐인 단조로운 연극을 통해, 경제가 위기에 처하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확인시켜준다.


지난 1년여는 우리 세대에게 가장 유별났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지난해 1월만 해도 누가 감히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경제가 코로나19 국면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하지만 숫자로 확인하는 피상적인 모습일 뿐일 것이다.


지난 1년여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을까. 많은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확대될 부의 불균형을 걱정했다. 윌리엄스가 1944년에 쓴 유리동물원을 통해 보여주듯 경제 위기는 없는 이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28일 취임 후 첫 상하원 합동 연설을 했다. 그는 "낙수 효과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향후 세계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제대로 짚은듯 싶다. 거센 저항을 뚫고 얼마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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